제6회 거북선 격납고 대방진굴항(삼천포시 대방동)
선진리성 앞 바다 사천대교 건너는 곤양(昆陽) 땅이다. 곤양은 충무공 이순신이 권율 장군 막하에서 백의종군하던 곳이기도 하다.
사천(泗川) 선진리 앞바닷물은 유난히 탁하다 못해 시멘트빛이다. 차마 민낯을 보여주기 부끄러운 모양이다. 일품이라는 실안(實安) 붉은 낙조조차 제 빛을 드러내지 못한다. 사천 일대는 이순신과 거북선의 고장이다. 주변에 거북선 사용의 최초 격전지, 거북선길(해안길), 이순신 바닷길 등의 이름이 붙었다. 그 이순신 바닷길 중 현재의 삼천포대교 입구이자 옛 대방진 군영지 숲 속에는 거북선을 감춰두었다는 대방진굴항(大芳眞堀港 혹은 項) 등으로 이어진다. 먼 바다에서는 드러나지 않도록 인위적으로 조성한 일종의 거북선 격납고인 셈이다.
남해로부터 사천만으로 진입하는 삼천포대교 출발지인 굴항(堀港) 일대는 과거 대방진의 군영이 개설됐던 자리다. 고려말 왜구에 대비 구나량진(仇羅梁)진영을 이곳에 설치했으며, 임란 때는 병사들의 훈련장과 휴식처로 사용되던 군영(軍營)숲이 굴항까지 이어진다. 의미는 고사하고 발음도 이상한 굴항(堀港)은 아마 우리말 ‘구렁(고어 굴헝=땅이 쑥 들어간 곳)’을 전래 과정에서 유사한 한자를 차용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忠武公全書」 기록으로 보면 거북선은 길이 약 20m(배밑 68척), 폭 약 4.5m(14척) 2층 구조였으며 萬機要覽에 전라좌수영 배속 1척(임란 당시 총 5척. 각 120명 가량 승선. 22개 포혈. 좌우 각 10개씩 노)이란 기록을 적용해 본다면 굴항의 규모로 미뤄 그에 부합되는 것으로 여겨진다.
하늘을 뒤덮은 연록빛 느티나무 그늘 아래 거울처럼 맑고 잔잔한 수면에 앙증맞은 하얀 쪽배 서너 척이 고즈넉하다. 늘어진 나뭇가지 틈으로 쏟아지는 햇살, 옥빛 물위에 잠긴 배그림자가 가늘게 파장에 흔들린다. 740살 늙은 느티나무가 묵묵히 굽어보는 굴항은 이제는 거북선 정박지가 아니라 거친 인생사와 속세를 벗어난 신선의 정원이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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