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니족 부락 전경/사진=김인환 |
소수민족 하니족(哈尼族)을 만나러 가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운남성 쿤밍(云南省 昆明)에 있는 성정부(省政府) 문È국에¼ 얻은 정보로는 약 130여만 명이성(省) 내 곳곳에 분포돼 있는데 주로 원강 (元江,) 흑강 (墨江,) 홍강 (红江) 등지에 살고 있다고 했다.
이밖에도 같은 운남성인 보이 (普洱보이차로 유명한 지역), 란창( 瀾沧),진원(镇源),멍해(孟海)쪽에도 일부 분산돼 있는데 필자는 먼저 란창(瀾沧) 지역부터 가보기로 했다.
도착하자마자 목적지 변경
큔밍(昆明)에서 버스로 8시간. 짧은 거리가 아니다. 먼저 란창 (瀾沧)을 택한 이유는 이미 아이니런(爱尼人)취재를 하면서 이곳 쎈 (县)정부 간부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곳 정부 간부로부터 은근히 추방압력을 받고 도망치듯 빠져나온 곳이기도 해서 다소 불안한 감도 없잖아 있었다.
시간도 몇 달 지났고 또 당시에 알고 지내던 여유 (旅游)국장은 무척 다정다감한 젊은이였기에 그를 믿고 싶은 마음이기도 했다. 그는 결코 필자가 다시 나타났다고해서 당국에 고발할 사람은 아닐 것 같아서였다.
란창에 도착하는 즉시 여유국장에게 전화를 했다. 무척 반갑게 맞이하는 음성이 들려온다. 지금 어디냐고 묻기에 지금 마악 란창에 도착했다고 하니까 금방 그의 목소리가 작아진다.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어디에 있느냐기에 종점 부근 식당이름을 대주었다. 그는 꼼짝말고 기다리라고 하면서 전화가 끊어졌다. 공연히 이곳으로 온 것인가? 하고 걱정이 고개를 든다. 정부와 식당까지 승용차로는 5분거리다.
만에 하나 염려스러움을 예방하기 위해 베낭을 다시 짊어지고 식당을 나왔다.
그렇지 않으리라고 믿으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멀찌감치 떨어진 은폐물 뒤에 몸을 숨기고 그의 출현을 지켜보기로 했다. 공안국에 고발이라도 했다면 필시 여러명이 들이닥칠 것이 뻔하다. 그렇다면 잽싸게 택시를 집어 타고 또 다른 지역으로 몸을 피해야 할지도 모른다.
10여분 쯤 지나자 낯익은 승용차가 식당 앞에 정거하고 보고 싶어 했던 여유국장이 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인다. 혼자 타고 온 듯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만약을 위해 잠시 뜸을 들이고 있으려니 식당 안으로 들어갔던 그가 다시 나오며 두리번 거리고 있다.
길 앞으로 나아가 큰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는 반가운 얼굴로 뛰어온다. 그리고는 악수도 하는 둥 마는 둥 자기 차로 잡아끈다. 차안에 자리를 잡고서야 그는 환하게 웃으며 어떻게 또 왔느냐며 좋아하는 모습이다.
너를 보고 싶어 또 왔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깔깔 웃어대며 저번에는 왜 갑자기 사라졌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며 필자를 걱정해 준다.
그리고 아직까지 내 얼굴이 그들에게 기분좋은 모습은 아닐 터이니 이곳에 머무를 생각은 안하는 것이 좋겠다며 어디로 갈 생각이냐고 묻는다.
(앞으로 기회 있을 때 다시 밝히겠지만 수 개 월 전 이곳에 왔을 때 아이니런(爱尼人)이 원래는 哈尼族 이 아닌 단일한 소수민족이었는데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소수민족 통일 정책에 의해 본인들 뜻과는 관계없이 哈尼族에 편입되었다는 것을 취재 도중 알게 되면서 정부 기록문서를 열람하려다가 담당직원이 공안당국에 이상한 외국인을 고발, 당일 밤 호텔에 나타난 사나이로부터 내일 아침 당장 이 지방을 떠나라는 점잖은 권유를 받고 서둘러 떠난 적이 있었다.)
이곳에 다시 온 이유는 哈尼族을 취재하기 위해서라고 밝히고 협조를 구했다. 그러자 그는 물론 이 부근에 哈尼族부락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조금 더 먼 곳에 있는 哈尼族을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며 홍허현(红河县)으로 가라고 한다.
그곳 县정부에 협조요청 전화를 해놓을 터이니 걱정말고 가라면서 종점까지 데리고 와서 红河县까지의 차표를 손수 끊어준다.
필자를 다시 만난 것이 기쁘면서도 불안을 감추지 못하는 그에게 오히려 미안하기만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예 발걸음을 처음부터 红河县으로 잡아야 했을 것을.
시간적으로도 거의 24시간을 허비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베트남 메콩의 상류가 되는 이곳 란창(瀾沧). 그 맛이 일품인 란창 맥주 맛도 못보고 털털 거리는 버스는 다시 9시간을 걸려 红河县에 도착했다.
늦은 밤이다. 먼저 빈 관을 찾아 피곤한 몸을 눕혔다. 중국의 유명한 담배 ‘홍허(红河)’의 담배 생산기지로 이름난 지역이다. 이왕 온 김에 내일은 이 담배제조창 견학부터 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잠을 청했다.
그 때 문 두드리는 소리. “누구요?” 하며 열어보니 왠 젊은 청년이 서 있다. 호텔 직원인 것 같은데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까 혹시 안마를 받을 생각이 없느냐? 예쁜 아가씨가 있다며 샐샐 거린다.
필요 없으니 다시 문 두드리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하고 뒤돌아서려는데 등 뒤에 대고 100元이면 특별서비스까지 해준다고 외친다.
보통 전화로 이런 제의가 다반사인 중국 내륙지방 호텔들인데 이곳은 아예 종업원이 호객행위를 할 정도라면 동네분위기는 뻔할 뻔자이겠구먼.
허기야 중국 최대의 담배제조창이 있는 곳이고 보면 경제적 여유도 조금은 있을 듯 싶기도 하다.
홍허「红河」 담배제조창의 문전박대
이튿날은 든든히 아침을 챙겨먹고 홍허담배 제조창으로 갔다. 커다란 성처럼 보이는 담배제조창이다. 정문에서부터 권위(?)가 느껴질 정도로 으리으리하다.
정문 보안(수위)은 낯선 외국인이 나타나 겁도 없이 사장면담을 요청해대니까 어디서 온 누구냐? 무슨 용건이냐?를 연발하며 아래 위를 훑어본다.
한국에서 온 작가로서 너희들 홍허담배와 공장을 취재하여 한국에 소개하고 싶어서 왔다고 하자 소개장이 있느냐고 되묻는다. 그런 것은 없다. 내 신분은 이거면 족하지 않느냐며 여권을 보여주니까 사전에 예약도 없었고, 윗 사람의 지시도 받지 못했다. 미안하지만 이곳 정부당국의 소개장이라도 받아오라며 노골적인 문전박대.
사장 면담을 요청하면 최소한 비서장, 비서장이 아니면 말단 간부라도 연결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이 일시에 무너져 내렸다.
하는 수 없이 다시 보자고 한 후 발길을 돌렸다. 县정부는 가까운 곳에 있었다. 커다란 인공호수가 아름다운 숲 속에 있었고 그 한 쪽에 정부청사가 있었다.
먼저 문화국을 찾았다. 들어가기 전에 쿤밍성 정부에 전화를 했다. 계획을 바꿔 지금 란창현이 아닌 홍허현에 와 있으며 지금 문화국장을 만나러 들어가고 있으니 전화 한 통만 해 달라고 부탁을 했다.
문화국장 사무실은 무척 컸다. 여비서가 먼저 인사를 하며 어디서 온 누구며 무슨 일로 왔느냐고 묻는다. 온 얼굴에 미소를 담고 있다. 왕 여드름 아가씨지만 밉지가 않다.
한국에서 온 작가인데 省정부에서 연락이 와 있을 거라고 하니까 잠시 기다려보라며 안으로 들어간다. 잠간 문을 여는 사이 안으로부터 여러 사람이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국장 혼자가 아닌 모양이다.
잠시 후 나온 비서 아가씨는 연신 생글거리며 무척 미안하다는 인사부터 한다. 오늘은 스케줄이 바빠 만날 수 없으니 내일 오전 10시에 다시 와달라는 얘기였다. 알겠다고 하고는 정부청사를 나올 수밖에.
오늘 나머지 시간은 红河县 시가지 구경이나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다시 택시를 탔다.
가장 번화한 지역에 내려달라고 하니까 무슨 뜻인지 몰라서 되묻는다. 中心街(쭝신지에)! 하니까 알아듣는 모양이다. 한참을 달리다가 운전기사가 말을 걸어온다.
“외국인이십니까?”
“그렇다.”
“일본 사람입니까? 아니면 홍콩 사람?”
“아니다. 한국 사람이다.”
“오, 한국인! 부자나라, 여자들이 예쁜 나라.”
하면서 혼자 좋아한다. 또 한참을 가다가 “여행 오셨습니까?”
“그렇다.”
“예쁜 여자 소개해 드릴까요?”
“뭐 하는 여자냐?”
“헤헤 헤헤, 같이 식사도 하고 술도 마실 수 있는 여자 그리고… 헤헤 헤헤.”
“알았다 너나 많이 만나고 재미 실컷 봐라. 이 삵괭이같은 자식아. (이것은 한국말로)”
▲ 하니족 난전 풍경/사진=김인환 |
가지(茄子)로 비장(脾臟)을 치료하다
紅河縣은 커다란 인공호수를 중간에 두고 옛날의 건물들과 현대 건축물들이 같이 공존하는 도시였고 새롭게 발전하고 있는 모습임을 느낄 수 있었다.
가장 중심가라고 불리우는 곳에서 서성거리다가 유명중의원 (有名中医院)이란 큰 간판을 발견하게 되었다. 며칠 전부터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음식만 먹으면 메스껍고 어제부터는 입술이 새카맣게 변하면서 입술 한 쪽은 갈라지기까지 했다.
두 군데 약국을 들러 물어보았지만 아무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고 그들이 내놓는 약은 선뜻 사고싶지가 않았다. 마침 큰 도시에서 제대로 갖춘 듯 싶은 한의원을 보자 혹시 명의라도 만나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가 고개를 쳐들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이미 십 여 명이 대기손님으로 앉아 있었다. 제법 소문난 의사가 있나보다 생각하고 그 끝 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낯선 차림에 호기심이 발동들을 했는지 그들 모두가 나를 유심히 살피기 시작한다. 이미 익숙해졌다고 믿었는데도 막상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게 되면 쑥스럽기 짝이 없다. 잠시 후 간호복 차림의 왠 아주머니가 나오더니 어떻게 왔느냐고 묻는다. (제길헐! 병원에 온 사람이 무엇 때문에 왔을까?) 진찰을 받고 싶다고 했더니, 저 쪽에 먼저 다녀오라고 손짓으로 가리킨다.
그가 가리키는 곳은 접수창구였다. 순서가 있는 것도 모르고 머저리짓을 하고 있는 외국인을 비웃었겠구먼. 3元을 먼저 내라고 해서 주었더니 4페이지 짜리 노트 비슷한 것을 한 권 준다. 내용인즉, 이름과 생년월일, 주소, 신장, 몸무게 등 이른바 신상명세서를 기재하는 환자 카드였다. 우선 이름과 생년월일만 쓰고 있다가 다시 꺼집어내어 주소란에 대한민국이라고 적어놓았다.
30여 분이 지나서야 의사 앞에 앉을 수 있었다. 외국인임을 금새 알아보았을 터인데도 전혀 무감각 무반응인 50대 남자의사. 분명 하얀 색이었을 까운은 누렇게 바랜채 몇 군데 숭숭 구멍까지 뚫려있다. 한마디로 너덜너덜한 의사까운이란 얘기다. 한 쪽 손으로 콧구멍을 후비며 나의 환자카드를 보고 있는데 새끼 손가락 끝에 매달린 새까만 손톱이 1cm쯤은 될 성싶게 길다. 의사라는 사람이 위생관념부터가 빵점이로세.
왜 왔느냐고 묻는다. 음식을 먹으면 메스껍다는 표현을 할 수가 없다. 이것은 필답으로도 어떤 한자를 써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이때만 해도 짧은 중국어 실력 때문에 거의 필답으로 의사를 전달하며 배짱 좋게 돌아다닐 때였다.) 메스껍다라는 한자표현을 끝내 쳐보이지 못하고 끙끙대다가 입술을 쭉 내밀며 색깔이 검게 변하고 있다고 써보였다. (为什么颜色黑色?)이렇게 썼던 것으로 기억한다.
무뚝뚝한 의사, 그러나 비장치료법 알려 줘
의사는 쯔워츠마(作呕吗)?라고 물었는데 이 말이 메스껍냐는 뜻임을 안 것은 훨씬 훗날의 일이다. 내 입술을 그 깨끗하지도 않은 손으로 만져보더니 비장(脾臟)이 문제있다며 약을 처방받겠느냐고 묻는다. OK라고 간단히 대답을 하니까 환자카드에 한참을 적어 내려가는데 얼핏 보기에도 약초이름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인 사람. 그렇다고 권위를 내 세우는 것도 아닌 무덤덤한 표정의 의사. 한국 같으면 이미 컴퓨터화되어 간단히 타자로 쳐 댈 처방안을 무려 10여 분 동안이나 볼펜으로 써내려가며 환자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똑같은 내용을 또 한 장 적어놓고서야 저 안 쪽으로 들어가라고 하고는 그것으로 볼 일 끝. 마지막 얘기로 체즈(茄子), 체즈 하면서 뚜어츠(多吃) 뚜어츠!한다. 이것 역시 가지를 많이 먹으라는 뜻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저 안 쪽이 어느 방향인지 알 길이 없어 주춤 거리니까 또 다른 아주머니가 나타나 내 쪽지를 보더니 구체적으로 가르쳐 준다.
건물을 나갔다가 다시 다른 골목으로 들어가서야 약 주는 곳을 찾았다. 창구로 내미니까 또 다른 골목으로 가리키며 그곳으로 먼저 갔다 오라고 한다. 돈을 먼저 내는 곳이었다. 다 알고보면 무척 합리적인 코오스 같지만 복잡한 절차는 영 질색이다. 환자카드를 들고 조그만 계산기를 두드리던 아가씨가 9元을 달라고 한다. 무슨 놈의 약값이 이렇게 싸담! 돈을 내고 쾅쾅 찍어주는 도장을 받은 후에 다시 약을 타는 곳으로 갔더니 저기 앉아서 기다리면 부를 터이니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자기 일에 열중이다. 친절은 어디다 국말아 먹었는지 하나같이 무뚝뚝하기만한 표정들이다.
다시 기다리기를 30여 분. 진시엔성(金先生)! 하고 부르는데 처음엔 나를 부르는지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고개를 돌리고 보려니 오라는 손짓을 한다. 두 주먹을 합친 것만한 봉다리가 무려 6개나 되는데 이것을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아주며 명함 크기의 쪽지를 같이 건네준다. 아니, 9元어치의 약이 이렇게 많다니? 쪽지를 유심히 살펴보니 어려운 한자가 수두룩하다. 대충 짐작하기에 이 모든 것을 약탕기에 다려서 하루 세 번 마시라는 것 같았다.
매일 동가식 서가숙(東家食 西家宿)하는 김삿갓 주제에 약탕기를 어디서 구하며 어느 세월에 편안히 세월아 네월아 달여먹고 앉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돈 주고 샀으니 쉽게 버리기도 아깝고, 그렇다고 들고 다니자니 부피가 큰 짐이 하나 더 늘어나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 하니족 주부 모습/사진=김인환 |
공연한 시간만 낭비했다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일단 비장(脾臟)이 안 좋다는 진단을 받은 것 만으로도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 터였다. 도대체 비장은 어디 붙어있는 것일까.
간장, 심장, 비장, 폐장, 신장 등을 오장이라고 하고 대장, 소장, 위, 담, 방광, 삼초 (한방에서 上焦 中焦 下焦를 합쳐 三焦라 한다는 이름만 알지 어디에 붙어 무슨 역할을 하는지는 모른다.)등을 6부라 해서 도합 오장육부라 한다는 것은 상식적인 문제로 알고 있지만 이 오장 중에 하나인 비장이 어디에 위치해 있으면서 무슨 기능을 갖고 있는 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내 몸 속의 비장에 탈이 났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래서 음식을 먹으면 메스꺼워 곧 토할 것 같고, 입술이 새까매지면서 가뭄 끝 논바닥처럼 갈라지고 있으니 비장이란 부위가 무슨 일로 토라졌는지 그 원인을 알길이 없다. 가만있자, 그러고 보니 보통 때 마음에 안드는 꼴을 보면 흔히 비위(脾胃)사납다든가, 비위가 상한다라고 하는데 요럴 때 비(脾)가 사용되는 걸 보면 제법 중요한 부위이긴 한가 보다. 허기야 하나님이 주신 우리네 신체부위 어느 한 곳인들 불필요한 곳이 있겠느냐마는.
시장기가 치밀어 올라 식당엘 앉았지만 음식생각이 없다. 다른 사람들 먹는 것을 보 또 메스꺼움증이 발동하기 때문이다. 다시 나와 두리번거리다가 중국사람들이 편한 대로 이름 붙인 麦当劳(맥도날드)에 들어가 햄버거와 콜라 한 잔을 샀다. 우물우물 씹으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의사가 했던 말,가지(茄子)를 많이 먹으라던 것이 떠오른다. 근처에 있는 재래시장을 빙빙 돌며 길고도 통통한 놈으로 두 개를 샀다. 어린 시절 텃밭에 심었던 가지를 따서 바지에 쓱쓱 문지른 후 씹어먹던 생각이 난다. 뒷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대충 씻은 후 우적우적 씹어 먹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외계인이라도 보는 듯 힐끔거린다. 가지를 날것으로 먹는 사람을 처음 보는 중국인들로서는 신기하기만 하리라. 남이야 어떻게 보건 말건 옛 향수도 만끽할 겸 의사의 얘기도 따를 겸 두 개를 삽시간에 먹어치웠다. 끄윽 트름까지 나오는데 뒷 기분은 '영 아니올시다' 이다.
사족(蛇足) 한 마디
중국 소수민족 취재탐방기가 엉뚱한 샛길로 빠진 감이 없잖아 있다. 그러나 왜 이런 얘기를 장황스럽게 늘어놓는가 하면 신통스럽게도 가지로 비장(脾臟)을 거뜬히 치료했기 때문이다. 독자 제현께서도 혹여나 메스꺼움이 심하면 일단 비장을 의심해 보기 바란다. 쉽게 증세가 가라앉지 않으면 필히 가지를 먹어보시란 얘기다. 물론 필자처럼 무식하게 날것으로 즐기지 말고 요리방법이야 여러가지일 터이니 몇 번 쯤 먹고나면 금새 치료가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나중에 선전 (深圳)에 돌아와서 도대체 비장이 어디 붙어있는 것이냐고 한국인 한의사에게 물어보니 두 사람은 우물쭈물이었고, 한 사람은 위 뒷 편에 붙어있는데 크기는 아주 작다고만 대답하고 있었다. (예끼, 이 무식이 유식한 풋내기 의사들아!)<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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