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티 이미지 뱅크 |
장마와 무더위로 지쳐 있을 때쯤 모처럼 학교동기모임이 있었다. 모임을 핑계로 몸보신이나 하자며 점심에 15000원짜리 샤브샤브 뷔페를 모임장소로 잡았다. 그런데 그날이 때마침 초복(初伏)이어서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작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때맞춰 제대로 몸보신을 하게 되었다.
“뭐니 뭐니 해도 복날 최고의 음식은 보신탕이지. 이런 거에 비길 게 아니야. 여름엔 보신탕 한 그릇 해야 여름을 잘 보낼 수 있다고.”
잘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임 인원 중 한 분이 여름 보양음식으로 보신탕이 최고라며 으뜸으로 꼽았다. 보신탕은 우리나라에선 개고기를 일컫는 말로 주로 쓰인다. 반려견을 많이 키우고 있는 요즘 사람들이나 외국인들에게는 거부감이 느껴지는 음식이지만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는 예전부터 몸보신용으로 즐겨 먹어왔다.
그런데 초복, 중복, 말복에 쓰이는 ‘복’이라는 글자를 보면 사람 앞에 개가 엎드리고 있는 형상의 글자로 ‘엎드릴 복(伏)’이라는 한자를 쓴다.
왜 엎드릴 복(伏)자를 쓰는 것일까?
최남선의 ‘조선상식’에 의하면 서기제복(暑氣制伏). 즉, 여름의 더운 기운을 제압하고 굴복 시킨다는 의미를 뜻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렇게 글자에도 개견(犬)자가 들어가듯이 가만히 살펴보면 복날은 개와 관련이 깊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 안에 진나라 통사를 기록한 진본기(秦本記)를 보면 ‘처음 복날을 만드니 개로써 고(蠱)를 저어했다’라고 했다. 그것은 중국 진나라 진덕공 2년에 성(城) 4대문 안에서 인간을 괴롭히는 벌레들을 물리치기 위해 개를 잡아 삼복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것이 복날의 시초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서양에서도 일 년 중 가장 더운 때를 ‘Dog days’라고 한단다. 이는 북반구의 한여름 큰 개 자리인 시리우스성이 태양에 근접하기 때문에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개와 무관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일식과 월식은 하늘의 개(시리우스성)가 해와 달을 삼켰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식이 오면 어둠이 오고 재앙이 닥쳐 농사를 망치고 역병이 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데 삼복 때 하늘의 개가 태양을 삼키는 일이 없도록 개를 잡아 미연에 방지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고기를 먹는 풍습과 결합해 개고기를 먹는 풍습이 생겼다고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개고기를 금기시 하는 이유도 있다. 단군시대에 단군을 도와 나라를 다스리던 오가(五加) 중에 구가(狗加)가 있다. 구가(狗加)는 개를 집안의 상징으로 삼았으며개는 한자로 견(犬)이라고도 하고 구(狗)라고도 한다. 개견(犬)의 大는 임금을 의미하고 犬자는 임금을 호위하는 짐승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그래서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 신성한 장소인 신전이나 조상을 모신 종묘에는 개가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지금도 일본 신사에는 ‘고려 개’란 뜻의 ’코마이누‘가 신사를 지키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서양 사람들은 신을 God라고 하는데 이 말은 개를 뜻하는 Dog을 거꾸로 한 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들이 시리우스 별에서 왔다고 여겼고 시리우스는 ‘큰 개자리’로 개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먹을 것이 그리 풍족하지 않았을 때는 가까이에서 구할 수 있는 개고기만큼 좋은 음식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현대에는 영양이 풍부한 음식들이 넘쳐나고 있다. 이제는 함께해서 좋은 사람들과 그늘 있는 계곡에서 시원한 수박 한 덩이 쪼개 먹어도 이 무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힘이 되지 않을까한다.
이번 휴가는 우리가족과 함께 호위무사인 반려견들을 데리고 옛 선조들이 그러했듯이 시원한 물에 발이나 담그러 계곡 근처 펫팬션을 찾아 삼복더위를 물리쳐야겠다.
김소영(태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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