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외교는 독백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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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외교는 독백이 아닙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 승인 2017-07-21 00:01
  • 양동길 / 시인양동길 / 시인
“언제 술 한 잔 하지”, “식사나 한 번 합시다.” 등 인사치례로 건네는 말들이 있습니다. 빈말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잘 사용하지 않지요. 저도 그렇습니다. 그러다보니 남이 저에게 인사치례로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경우가 있답니다. 정확한 의사나 의미 전달이 개인 간에도 쉽지 않지요.

충주 D고등학교 교장인 친구가 충주에 놀러오라 하였습니다. 그것도 여러 차례 말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대책 없는 일이지요. 저는 10여명의 지인을 데리고 충주에 갔습니다. 부부가 따뜻하고 다정하게 환영해 주더군요. 점심까지 후하게 대접 받았습니다. 오라했으니 당연하다 생각한 탓에, 감사의 뜻도 제대로 전하지 않은 것 같아요. 덕분에 충주 구경은 참 잘 했답니다.

충주 시내를 감싸고 흐르는 남한강과 달천이 만나는 곳에 탄금대가 있습니다. 송림과 기암절벽, 일필휘지 같은 강물이 잘 어우러진 곳입니다. 아시는 것처럼 악성 우륵(于勒)이 너럭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타던 장소지요. 미묘한 가야금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마을이 형성되었답니다. 이 멋스러운 곳에 잠든 사무친 역사도 익히 아실 것입니다.

임진왜란 때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 1군에 8천여 병사가 허망하게 몰살된 곳입니다. 지금은 갈대만 무성히 그날의 말발굽소리를 되뇌고 있더군요.

일본이 통일되었다하자 선조는 정세를 살피고 정탐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냅니다. 다녀온 정사 황윤길(黃允吉, 1536 ~ ?)과 부사 김성일(김성일(金誠一, 1538 ~ 1593)은 서로 상반된 보고를 하지요. 황윤길은 병화를 예견하였습니다. 김성일은 그런 징후를 발견하지 못하였으며, 쓸데없는 말로 민심을 동요시키는 것은 사리에 매우 어긋난다 하였습니다. 당시의 당파 중 동인이 권력을 잡고 있었는데, 불행히도 김성일이 동인이었습니다.

거의 무방비 상태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파죽지세破竹之勢로 일본군이 한양을 향합니다. 명장으로 명성이 자자하던 신립(申砬, 1546 ~ 1592)을 삼도순변사로 임명하여 적을 막도록 하지요.

전략전술의 선택에 대해서는 지금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병력과 전력에 큰 차이를 느낀 신립은 탄금대에서 그 유명한 배수진背水陣을 칩니다. 한편으론 북방전투에서 단련된 기마정병을 믿었습니다. 기동력이 우수할 뿐만 아니라 불을 붙여 발사하는 조총보다 활이 더 빠르다 생각하지요.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일본군은 오랜 내전으로 조총 사용이 숙련되어 있었어요. 조총을 3열로 서서 쏘기 때문에 반격할 틈이 없었습니다. 앞줄이 쏘고 앉으면 그 다음 줄이 일어나 쏘고, 쏘고 앉으면 다음 줄이 일어서서 쏘는 식이었습니다. 오히려 말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조준하기만 쉬웠지요. 습지라 말도 빨리 달리지 못했답니다. 장창병과 조총병을 동시 운용하는 일본군의 뛰어난 보병전법을 몰라도 너무 몰랐던 것입니다.

7년 전쟁으로 조선과 명나라는 피폐해집니다. 만주에 흩어져 살던 여진족이 세운 후금이 이틈을 타 세력을 확장합니다. 다행히 광해군은 주변 국가들에 밀정을 파견하여 항상 정세를 살핍니다. 후금이 명나라를 침략하자 명이 구원병을 요청하지요. 임진왜란 중에 구원병을 보내준 명나라를 도와야 한다는 명분론이 우세했지만 광해군은 실리외교를 택합니다. 절묘하게 전쟁을 피해가지요. 그러나 왕권 강화 과정에서 빚은 골육상쟁骨肉相爭으로 왕위에서 쫓겨납니다.

인조가 등극한 후, 정세변화를 뒤로하고 명분을 앞세우다가 금의 침략을 받습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 그것입니다. 병자호란 시 불과 보름 만에 한양이 무너집니다. 남한산성으로 도피하지요. 지방에서 올라오는 지원군마저 당도하기도 전에 족족 패퇴합니다. 곧바로 고립무원孤立無援이 되지요. 결국 버티지 못하고 48일 만에 항복합니다. 우리 역사상 최악의 치욕중 하나인 ‘삼전도 굴욕’입니다. 왕이 삼공육경(三公六卿, 3정승과 6조 판서)을 거느리고 배례합니다. 청 태종이 앉아있는 단을 향해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땅에 박는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예를 올립니다. 숭덕崇德이라는 청나라의 연호를 사용하게 되고, 군신관계로 복속되어 1895년 청나라가 일본에 패할 때까지 지속됩니다.

조선 중기 국난의 역사를 짧게 정리 해보았습니다. 생뚱맞게 역사이야기를 나열한 것은 지금의 국제관계나 환경이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외교와 국방, 참으로 어려운 것입니다. 대북관계도 다를 바가 없습니다. 외교는 독백이 아닙니다. 상대가 없으면 외교도 없겠지요.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白戰不殆는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습니다. 준비 없이 목소리만 크다고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국론은 반목하는 것이 아니라 모아가는 것입니다. 실개천이 자꾸만 합수쳐야 강물이 되어 바다에 이를 수 있습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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