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나리 |
▲ 지리산 전경 |
하루의 피로가 정절에 달하는 시각 객실 듬성듬성 보이는 승객들은 좌석에 눌려 있었고, 나도 잠을 덜 이룬 두통에 배낭을 선반에 올리고 털썩 주저앉았다.
기상청 산악날씨와 대피소 예약상황을 확인하며 스르르 잠들때쯤 전남 순천시 구례구역에 도달했다. 새벽 3시 20분 작은 기차역을 빠져나오는 이들은 배낭을 멘 등산객 10여명 이었고, 역전 건너 정차한 구례군농어촌버스에 약속한 듯 오른다.
지리산에서 혼자서 2박3일, 버너와 코펠, 식료품을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성삼재 고개(해발 1094m)에서 엔진이 달린 기계에서 몸을 내린다.
▲ 노랑원추리 |
굽이굽이 산줄기 많은 지리산은 등산로도 여러 개인데 사람들이 주로 오가는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거쳐 중봉과 써리봉에서 대원사방향으로 내려가기로 마음먹었다. 지리산의 여러 자락을 연결하는 등뼈에 해당하는 길인에 길이 멀고 험하지만, 풍경과 꽃, 나무를 보기에 안성맞춤이다. 산행시작 한 시간 만에 도착한 노고단(1507m)에서도 사실상 걸어갈 정도의 거리만 보였고 온 세상이 구름에 덮여 있었다.
노고단은 특히 국립공원관리공단에 사전 예약한 등산객에게만 탐방을 허용할 정도로 보호되는 곳으로 구름 위의 꽃밭은 이날 볼 수 없었다.
▲ 큰까치수염 |
또 그 주변 볕이 잘 드는 양지마다 큰까치수염이 지천이다. 희고 작은 꽃이 줄기 끝에 빽빽이 달렸는데 꽃자루가 보리이삭처럼 굽어 밑에서부터 꽃이 피어 가는 게 특징이다.
또 수풀을 헤치며 가다 보면 탁구공만 한 봉우리를 등산로에 고개를 내민 꽃이 있었다. 온통 푸른 숲에서 노랑 꽃잎은 단연 눈에 띄었고 가까이 가서야 지리산의 상징 같은 꽃 노랑원추리를 알아봤다. 오후에 피기 시작해 다음날 오전 시드는 꽃잎은 하루만 볼 수 있다는 데 운이 좋았다.
▲ 지리터리풀 |
흡사 작은 밤송이를 머리에 인 것처럼 생긴 꽃은 수리취였는데 뾰족한 가시가 많아 멀리서만 바라봤고, 금강애기나리는 가여움을 자아냈다. 애기나리는 고산지역에서만 자라는데 어찌나 작고 가늘던지 입김에 꽃잎이 떨어질까봐 숨죽여 지켜봤다.
벽소령대피소에서 밤을 보내고 맞은 둘째 날은 다행히 구름이 걷힌 비교적 맑은 날씨였다. 수도꼭지가 없으니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준비한 버너에 밥을 지어먹고도 설거지는 휴지로 쓱쓱 닦아내는 게 전부다.
▲ 매미꽃 |
구상나무는 세계에서도 우리나라 그것도 지리ㆍ한라ㆍ덕유산의 높은 지역에서만 자생하는 나무인데 ‘Korean fir’이름으로 외국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 나무로 선호한다. 키가 20m쯤 자라고 가지가 옆으로 넓게 뻗어 원통형 솔방울이 하늘을 향해 선다는데 이날은 볼 수 없었다.
▲ 돌양지꽃 |
봉우리와 고개를 오르락내리락하며 이어지는데 길옆에서 선풍기 날개 같은 꽃잎을 지닌 물레나물, 산수국 같은 꽃들이 보물찾기하듯 순간순간 눈에 띄었다. 지리산에서는 지금도 간혹 새로운 식물이 발견되는데 해발 1500m급 봉우리가 20개 이상이고 바람과 구름이 산자락에 걸리고 골짜기에 흩어지며 서로 다른 환경이 만들어지는데 식물군이 다양한 원동력이다.
고산지대의 지표식물인 좀고채목도 세석평전에서 관찰할 수 있고, 눕다시피 쓰러져 자라는 나무부터 한쪽으로만 가지를 뻗은 기형적 나무까지 척박한 환경에 적응한 모습 그대로였다.
▲ 백당나무 |
천왕봉에서 내려와 3시간 거리인 중산리 대신 6시간 거리의 써리봉과 유평리 방향으로 하산한 것은 마지막까지 꽃과 나무를 더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노란 매미꽃이며 분홍 말나리, 뒤늦게 핀 철쭉 두 송이를 이곳에서 마주할 수 있었다. 지리산에서 55시간 30분을 보내고 마주한 평범한 시멘트 도로 앞에서 겁이 났다. “시멘트 길에서 어떻게 살았던 거지”임병안 기자 victorylba@
*가는 길=서대전역에서 기차를 이용해 전남 구례까지 이동 후 시내버스로 지리산 입구까지 이동.
*돌아오는 길=중산리 방향 하산 후 시내버스로 진주터미널 이동, 고속버스로 대전 도착.
*대피소는 사전예약이 필수며 모포와 간단한 식료품을 판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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