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없으면/길을 만들며 간다
여기서부터 역사이다/역사란 과거가 아니라
미래로부터(중략)/길이 있다
수많은 내일이/완벽하게 오고 있는 길이 있다 <고은의 시 길中>
▲ 고미선 편집부장 |
정확하게는 매일같이 건넜던 다리가 사라진다고 표현하는게 맞겠다. 10년이 훌쩍 넘도록 그저 일상으로 지나쳤던 거리, 그 건물들의 표정들도 당분간 안녕~.
1984년 준공된 후 대전의 동서지역을 연결해 온 홍도육교, 30여년간 위로는 하루 7~8만대의 자동차와 아래로는 수많은 기차들을 스쳐보내며 오랜시간 참 고생 많았다는 생각이 든다.
홍도육교 철거일이 가까워 질수록 심난했던 몇가지가 있다. 가장 먼저, 무의미하게 추가될 출퇴근 시간과 돌아가야 하는 불편함 그리고 육교와 함께 허물어질 소소한 추억들이 그것이다.
면허를 따고 처음 운전대를 잡았던 20대, 스틱운전자들에게 홍도육교의 겨울은 그야말로 ‘헬’이었다. 눈만 오면 상습체증을 보이던 그곳, 엉금엉금 기어가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브레이크를 밟아서는 안된다는 긴장감에 식은땀은 흐르고….
날씨가 궂은 날이면 어김없이 사회면 단골뉴스로 자리잡은 홍도육교 접촉사고 소식들. 커브길에서의 속도조절에 서툴렀던 초보운전자들에게 육교의 가장 윗부분 S자 곡선지역은 중앙선 침범 사고의 주범이 되곤 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인명사고도 잊을만 하면 터졌다. 몇 년전부터는 노후화로 인해 안전펜스가 뚫리거나 추락해 기차선 안전문제까지 제기되는 등 철거에 대한 여론은 커져만 갔다.
물론 나쁜 기억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홍도육교의 가장 높은 곳에 펼쳐진 대전 야경은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주기에 충분했고 여름철 빗방울이 우수수 떨어질때 이상하게도 홍도육교를 건너고 나면 멈추곤 했다. 국지성 기후의 영향이었을까? 아니면 우연이었을 지도….
앓던 이처럼, 뽑기도 놔두기도 걱정스러웠던 홍도육교는 결국 경부고속철도변 정비사업과 병행해 지하화 사업에 들어가 2년후 왕복 4차로가 아닌 6차로의 지하차도로 변신하게 된다.
며칠전부터 비래동 집에서 오류동 회사까지의 버스노선과 우회도로를 챙겨보았다.
임시 개통된 정동 지하차도는 좁아서 현재도 몸살을 앓는데다 홍도육교 아래쪽 새롭게 뚫린 동산지하차도와 성남지하차도 또한 너무 좁아서 포기했다.
현재로는 삼성지하차도나 조금 돌아가더라도 대전역 동광장 쪽으로 빠져나가는 길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대전의 남북축을 가로지르는 경부선 철도를 넘는 차량 중 상당수가 홍도육교를 이용해 왔다는 점에서 지하차로가 건설되는 2019년 12월까지 주변 막힘은 피할 수 없는 형국이다.
결국 모든 불편은 시민들이 감수해야 할 몫이 되었다.
하지만 익숙하다는 것에 만족해 변화하지 않는다면 더 큰 편리함과 안전함도 누릴 수 없지 않을까. 극심한 교통체증이 예상되고, 대전의 대표 지명이 사라져 안타깝지만 좀 더 변화된 도심을 위해 참아야 한다.
2년후 누리게 될 '달콤한 보상'을 기대하며 오늘도 새로운 길을 향해 시동을 건다.
/고미선 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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