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탁소가 집으로 오는 국도변 연도에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드문드문 산 중턱의 진달래.
흐드러진 노란 개나리와 수줍은 듯 피어있는 진달래를 볼 때마다, 진달래는 우리 마누라, 개나리는 옆집 바람기 있는 아낙… 이라는 느낌을 마탁소는 지우지 못한다.
‘살며시 즈려밟고 가시옵소서…’를 떠올리지 않아도 진달래를 볼 때면 마음이 늘 처연해진다.
청순가련형의 갸날픈 여인, 진달래는 참꽃이라고도 했지.
진달래와 닮은 철쭉은 꽃에 독이 있어 먹을 수 없다. 그러나 진달래는 독이 없어 떡도 만들고 술도 빚으니 참꽃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진달래…
마탁소는 진달래를 보면 또 해당화가 생각난다. 왜 그런지 이유는 없다.
어쩐지 아련하고 슬픈 여인.
안면도의 해당화는 바다의 진달래요, 진달래는 바다의 해당화 같은 정서를 마탁소는 가지고 있다.
당신은 해당화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머 일찍 왔나 두려워합니다.
철 모르는 아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채 하얐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위에 놓입니다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어서
입술에 대히고
'너는 언제 피었니'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한용운 "해당화")
나리 나리, 개나리…
가지를 뻗어 가며 주위를 노랗게 물들이면서도, 아직 용기는 없어 감히 서울까지는 못나간 반반한 시골 여인…
마음은 착하고 연하다마는 가끔 울렁거리는 천성의 바람기는 아마도 생김새가 예쁘다는 어렸을 적부터 들은 얘기 때문이리라.
결국 도시에 나가 보았지만, 연애는 했어도 화끈한 로맨스는 없었다.
추억마다 아롱지는 상처와 연민…
그래도 아직은 곱고 예쁜 얼굴을 거울에 비쳐본다.
개나리…
혼자 장편 소설을 쓰면서 속도를 내서 2차선 길을 달린다.
마탁소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진달래는 진달래요, 개나리는 개나리일 뿐, 이미지라는 것은 사람들이 제각기 만들어 낸 픽션일 따름이다.
진달래의 분홍이나 자색은 중국에서는 고귀하고 장엄한 색깔로 보아서 자금성(紫禁城)이라는 권위의 집합체를 이 색깔로 나타냈지만, 미안하게도 이태리에서 자색은 실패나 죽음을 몰고 오는 색깔로 본다.
그들은 오페라를 할 때 절대로 자색 옷을 입지 않는다. 오페라 구경가는 관객이 자색 옷을 입고 가는 것은 실패를 기원하는 저주로 본다.
개나리의 노란색은 중국에서는 황제의 색깔이요, 자존심의 색깔이다.
말레이시아나 인도에서는 왕실의 로열 컬러다.
그렇지만, 싱가포르에서는 노동자의 색깔이요, 기독교권에서는 가장 혐오하는 색깔이다.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의 옷이 노란색이었다.
노란색은 허무를 뜻한다.
서유럽에서 노란 개나리를 누구에게 보냈다면, 그것은 애정이 식었다는 절교의 선언이다.
브라질에서는 노란색이 절망의 색깔이요, 이슬람교에서는 죽음을 뜻한다.
예전에 이라크의 폭력테러 집단 알카에다 조직이 미국인 인질들을 잔인하게 참수했을 때 노란 색 옷을 입힌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지 모른다.
개나리의 꽃말이 ‘희망’이요, 진달래의 꽃말이 ‘사랑의 즐거움’이라고 붙인 문화는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아무튼 그들도 그들이듯이 마탁소의 눈에는 진달래는 그렇게, 개나리는 이렇게 보이는 걸 어쩌란 말인가?
진달래 꽃 우리 마누라.
생각할수록 진달래 같은 마누라가 참으로 보고 싶었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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