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영석(대전중리초등학교 교장) |
이런 상황에서 많은 어른들은 “요즘 학교에서는 학생들을 도대체 어떻게 가르치길래…”라고 말하며 학교 교육을 비판하곤 한다. 교사라는 직업이 학생들의 교육을 담당하는 일인 것은 맞지만 학생의 모든 잘못이 학교 교육과 교사의 잘못으로 이야기 될 때는 억울한 마음도 든다. 어느 교사가 제자에게 바르지 못한 행동을 하라고 가르치겠는가?
학교 다음으로 거론되는 곳은 가정이다. 그렇다면 부모의 잘못된 가정교육 탓일까?
“우리 아이는 원래 행동이 바른 아이였는데 나쁜 친구들을 사귀어 나쁜 것들을 배웠다”고 말씀하시며 자녀의 문제행동에 충격을 받으신 부모님들을 종종 만난다. 아마도 대한민국 모든 부모님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녀에게 바르게 행동하라고 열심히 지도하고 계실 것이다.
학교도 가정도 아니라면 학생들의 거친 언어와 비행은 학생을 둘러싼 사회 환경의 탓일까? 욕을 멋지게 날리는 영상물을 비롯해 폭력적인 만화, 수많은 욕설이 오가는 인터넷 게임, 과도한 학업 스트레스 등 학생들의 비행을 부추기는 사회요인은 적지 않다. 그렇다고 교사와 부모는 열심히 교육하는데 순전히 사회 환경 때문에 요즘 학생들 비행이 늘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무언가 찜찜하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마을 전체가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다. 한 명의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선 한 가정만의 노력으로는 부족하며 주변 이웃의 도움도 필요하다는 뜻일 것이다. 만약 필자가 어린 시절 동네에서 비행을 하고 돌아다녔다면 동네 어른들에게 야단을 맞고 그 소문이 부모님 귀에까지 들어가 또 한 번 크게 혼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지난 반세기 급속한 산업화ㆍ도시화의 진행과 함께 ‘이웃사촌’이란 낱말로 대표되던 끈끈한 이웃관계는 급속히 위축돼 버렸다. 이는 우리 아이들이 동네에서 욕을 하든, 담배를 피든, 어지간한 나쁜 짓을 해도 관심 갖고 말리고 야단쳐 줄 이웃이 줄어들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행과 같은 나쁜 습관은 누가 의도적으로 가르쳐서 배우게 된다기보다는 농사를 지을 때 밭의 잡초를 바로 바로 뽑아주지 않으면 금세 무성해지듯 어디선가 묻어들어 시나브로 몸에 배어버린다. 반면 좋은 습관은 한두 번 열심히 가르쳤다고 습관으로 자리 잡지 못한다. 매일 매일 지속적인 관심으로 돌보는 부지런한 손길이 필요하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아이들의 인성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던 이웃 어른이 사라졌고 그 만큼의 사각지대가 존재하는 셈이다.
반면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관련 산업과 인터넷ㆍ방송 등 매체의 발달 등으로 학생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어른들은 매우 다양해지고 확장됐다. 유투브 영상 제작자, 연예인 및 방송인, 게임 제작자 및 게이머, 관련 정책 입안 및 집행하는 공무원, 정치인, 청소년 대상 제품을 만드는 기업인 등 이들은 아이들과 물리적으로 대면하지 않고도 아이들의 인성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현대의 이웃어른들이다.
한 아이를 반듯하게 키우기 위해선 일차적으로 가정과 학교에서의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더불어 부모로서, 어른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당장 눈앞의 성과나 돈벌이 수단을 넘어 모든 아이들에게 보다 좋은 인간다운 교육 환경을 만들어주려는 이웃 어른으로서의 책임이 요구된다. 옳지만 먼 미래 공동의 이익과 당장 눈앞의 편리함과 이익이 상충될 때 성숙한 어른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어른들의 이기적인 선택이 총체적으로 쌓여 나타나는 요즈음 아이들의 모습은 실로 걱정스럽다.
수많은 직업이 소멸되고 생성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만이 지니는 인성은 그 자체로 개인의 경쟁력이자 국가 경쟁력이라고 한다. 훌륭한 인성을 갖춘 젊은이들이 가득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상상해보라. 반대로 영악하고 자기만 아는 청년들이 넘실대는 우리나라를 상상해보라. 자식을 잘 키워낸 부모의 노후가 마음 편하듯 우리 세대가 다음 세대의 인성교육을 위해 노력한 ‘딱’ 그만큼 우리는 노년이 되어 되돌려 받을 것이다.
이영석(대전중리초등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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