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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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 승인 2017-07-16 11:28
  • 신문게재 2017-07-17 23면
  • 유낙준 주교(성공회 대전교구장)유낙준 주교(성공회 대전교구장)
▲ 유낙준 주교(성공회 대전교구장)
▲ 유낙준 주교(성공회 대전교구장)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한 집단의 구성원들의 뜻을 담아서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신의 의지를 담아서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하려면 ‘지금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지금 내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를 알지 못하면 자신의 인생길의 방향을 알 수 없고 또 공동체 사회의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없고, 신이 원하는 대로 길을 갈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내가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지 못하고 방황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허상이 나를 지배하고, 우상이 나를 이끌게 하는 자리에서 벗어나려면 나를 더 깊이 알아야 하고 나를 더 깊이 이해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깊이 알아 가는 시간이 필요하고, 나 자신을 더 깊이 이해해 가는 시간이 필요한 존재가 바로 나입니다. 우리가 제대로 살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정확하게 아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을 정확하게 알아야만 내 옆의 타인이 무슨 일을 하는지 그리고 신이 지금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도 알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시대의 징표를 알게 됩니다. 시대의 징표를 알면 시대의 가치를 담아가면서 살게 됩니다. 시대의 가치를 놓치면 방황하거나 흔들리면서 절망하게 됩니다. 그러니 시대의 가치를 담아가는 인생을 세워보려면 자신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한 지인은 대학공부를 마친 아버지와 한글만 겨우 깨우친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와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생일에 팥떡을 만든 어머니보다 케익을 사오신 아버지와 더 친해지게 되었고, 집에만 계신 아버지와 더 이야기를 나눴지만 막상 노동일을 하신 어머니는 항상 일에 지쳐 밤늦게 가사 일을 하시면서 큰소리를 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어머니의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에 이야기를 나누기가 싫었고 소소한 문제들을 풀지 못한 채 갈등적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지인은 여성으로서 결혼 후 아이낳고 키우면서 어느 날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어머니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 아팠을 때 자신을 가슴으로 품고 긴 밤을 돌보신 엄마의 지난한 삶이 어느날 갑자기 떠올랐고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많이 배웠지만 돈은 잘 벌지 못하는 남편을 위하여 돈을 벌고 남편의 기를 살려 주고 남편의 삶을 인정하는 어머니의 길고 힘든 노동의 삶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행위였고 또한 힘겨운 삶 속에서 자녀들을 돌본 엄마의 삶이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보인 것입니다. 딸이 아니라 한 여성의 시각으로 어머니의 인생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갈등은 사라지고 자신의 삶도 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안다는 것은 이해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으로 우리는 무엇인가 할 때 갈등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 이상으로 그의 내면과 존재를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깊이 이해하는 앎일 때 우리는 사랑의 문턱에 들어선 것입니다. 앎이 있지 아니한 사랑은 사랑하지 않는 삶입니다. 사랑한다면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앎이 아니라 깊이 그리고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더 알아갈수록 자기 안의 갈등요인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갈등요인들이 사라지면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일만이 자신이 걸어 갈 길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자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신까지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사람관계의 핵심으로 섰을 때 ‘참을 수 없는 관계나 잘 지낼 수 없는 관계’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사랑해야 할 때 도피하지 않고 숨지 않고 당당하게 사랑하는 자유로운 인생이 됩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이 신이 나에게 바라는 삶이고, 공동체 성원들이 나에게 원하는 삶이고, 나 자신이 나에게 바라는 삶입니다. 이때부터 나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게 됩니다.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면서 사는 지 아는 것은 사랑 안에 살 때 가능하게 됩니다. 사랑하면서 오늘을 사는 것이 내가 진짜 할 일이 되고, 사랑 안에서 오늘을 내가 사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내 자신이 내게 바라는 일이고 공동체가 나에게 바라는 일이고 신이 나에게 바라는 일입니다. 그리하면 시대의 징표인 사랑의 삶에 우리가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유낙준 주교(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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