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낙준 주교(성공회 대전교구장) |
한 지인은 대학공부를 마친 아버지와 한글만 겨우 깨우친 어머니 사이에서 자라면서 어머니와 많은 갈등을 겪었습니다. 생일에 팥떡을 만든 어머니보다 케익을 사오신 아버지와 더 친해지게 되었고, 집에만 계신 아버지와 더 이야기를 나눴지만 막상 노동일을 하신 어머니는 항상 일에 지쳐 밤늦게 가사 일을 하시면서 큰소리를 지르는 모습이었습니다. 부드러운 어머니의 이미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기에 이야기를 나누기가 싫었고 소소한 문제들을 풀지 못한 채 갈등적 관계가 되었습니다. 그 지인은 여성으로서 결혼 후 아이낳고 키우면서 어느 날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어머니를 이해하고 품을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릴 적 아팠을 때 자신을 가슴으로 품고 긴 밤을 돌보신 엄마의 지난한 삶이 어느날 갑자기 떠올랐고 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순식간에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많이 배웠지만 돈은 잘 벌지 못하는 남편을 위하여 돈을 벌고 남편의 기를 살려 주고 남편의 삶을 인정하는 어머니의 길고 힘든 노동의 삶이 자신의 가정을 지키는 행위였고 또한 힘겨운 삶 속에서 자녀들을 돌본 엄마의 삶이 나이 사십이 넘어서야 보인 것입니다. 딸이 아니라 한 여성의 시각으로 어머니의 인생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을 때 어머니에 대한 미움과 갈등은 사라지고 자신의 삶도 더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안다는 것은 이해된다는 것을 전제하는 것으로 우리는 무엇인가 할 때 갈등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사람이 사람을 안다는 것은 단순히 이름을 기억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름 이상으로 그의 내면과 존재를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깊이 이해하는 앎일 때 우리는 사랑의 문턱에 들어선 것입니다. 앎이 있지 아니한 사랑은 사랑하지 않는 삶입니다. 사랑한다면 알아야 합니다. 단순히 앎이 아니라 깊이 그리고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더 알아갈수록 자기 안의 갈등요인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갈등요인들이 사라지면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일만이 자신이 걸어 갈 길이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자신을 사랑할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신까지 사랑하게 됩니다. 우리는 관계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사람관계의 핵심으로 섰을 때 ‘참을 수 없는 관계나 잘 지낼 수 없는 관계’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사랑해야 할 때 도피하지 않고 숨지 않고 당당하게 사랑하는 자유로운 인생이 됩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자유로운 삶이 신이 나에게 바라는 삶이고, 공동체 성원들이 나에게 원하는 삶이고, 나 자신이 나에게 바라는 삶입니다. 이때부터 나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고 사는지 알게 됩니다. 자신이 진정 무엇을 하면서 사는 지 아는 것은 사랑 안에 살 때 가능하게 됩니다. 사랑하면서 오늘을 사는 것이 내가 진짜 할 일이 되고, 사랑 안에서 오늘을 내가 사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내 자신이 내게 바라는 일이고 공동체가 나에게 바라는 일이고 신이 나에게 바라는 일입니다. 그리하면 시대의 징표인 사랑의 삶에 우리가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유낙준 주교(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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