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정을 흐드러지게 수놓았던 벚꽃은 어느새 지고, 그야말로 신록이 우거지는 여름이 다가오고 있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6월이다. 첫 발령을 받은 게 엊그제 같은데 나도 벌써 4년차 교사가 되었다.
요 근래 들어 매일 생각했다. 4년차가 되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학교 시스템에도 어느 정도 적응해서 일도 척척, 수업도 척척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아주 자신만만하게 2017학년도를 시작했는데 이게 웬걸. 올 한 해 성실하게 살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나의 결심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나는 학기 초부터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 성실하게 살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넘어져서 아쉬운 마음이 들던 찰나, 우리 반 아이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새 학기를 시작하면서 나는 올해 학급 경영관으로 ‘자유’를 삼았다. 우리 반 아이들에게 큰 틀은 주되, 방법은 최대한 자유롭게 하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과학 시간에도 모둠별 실험을 하면서 주어진 실험 도구를 정말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했고 실험 방법도 스스로 생각하도록 했다. 과학 뿐만 아니라 다른 과목에서도 모둠별로 활동을 많이 하면서 최대한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회를 제공했다.
일기 쓰기도 마찬가지다. 사실 인권 침해라고 해서 일기 자체를 걷지 않는 학급도 많은데, 우리 반은 특별한 주제 일기를 쓰고 자신의 생각을 공유했다. 물론 나의 의도대로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았다. 잡담으로 한 시간이 가득 채워졌던 때도 있었고, 일기를 거의 쓰지 않는 학생도 있었다. 내가 너무 풀어주지는 않았나, 자유라는 이름 아래 방목하지는 않았나 생각이 들 무렵, 국어 교과서에서 면담하기 단원을 공부하게 되었다.
사실 거의 기대하지 않았다. 짧은 교직 경력이지만 6학년만 세 번째인데, 면담 대상자를 정해서 모둠별로 면담을 하는 과정을 보면 거의 교내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면담 대상자는 주로 교장 선생님, 교감 선생님 그리고 같은 학년 선생님들이었다. 그것도 귀찮은 학생들은 담임인 나와 면담을 하기를 원했다.
그런데 올해는 달랐다. 모둠별로 면담을 하고 자료를 정리할 시간을 일주일 주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은 나를 깜짝 놀래켰다. 면담 대상자를 자유롭게 선택하라고 했더니 아파트 경비원 아저씨, 시내의 어느 레스토랑 사장님, 동네 사진관 사장님 그리고 지역 신문 기자까지 아이들이 직접 면담을 요청해서 질문지를 만들고, 아주 완벽하게 면담하기 활동을 수행했다.
학교를 뛰어 넘어 활동을 하리라곤 전혀 기대를 안 했던 터라 참 뿌듯했다. 이제 조금씩 맞아가고 있는건가. 그러다 문득 콩나물시루 같다는 생각을 했다. 세 달 가까이 생활하며 아직 아무것도 변한게 없다고 생각했던 우리 반인데, 사실은 아주 조금씩 변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심정으로 계속 붓다 보면 어느새 쑥 자라있는 콩나물처럼, 우리 반 아이들도 내가 주는 물을 열심히 먹고 자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어여쁜 싹을 틔웠다. 졸업할 즈음엔 몸도 마음도 한 뼘씩 쑥 자란 콩나물일 것이다.
나도 지금은 한낱 콩에 불과하지만 언젠가는 샛노란 머리를 수줍게 내미는 콩나물이 되지 않을까. 먼훗날 누가 봐도 자랑스럽고 부끄럽지 않은 콩나물이 될 수 있도록 다시금 힘을 내어 걸어야겠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우리 아이들도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아이들에게 좋은 물을 줄 수 있도록 오늘도 한 발을 내디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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