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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이 많아도 나눠주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없어도 나눠먹는 사람이 있다. 아흔아홉의 쌀가마니에 한 가마니를 더 채워 백 가마니를 만들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되 밖에 없어도 나눠 먹는 사람이 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 우리 민족은 정이 있고 사랑이 가득한 민족이다. 요즘 도시에서는 이웃끼리 음식을 나눠먹는 경우가 많지 않다.
얼마 전에 이웃집에서 전화가 왔다.
“혹시, 호박죽 좋아하세요?”
“그럼요, 좋아하고 말고요.”
나눠먹고 싶은데 조심스런 물음이다. 갖다 주겠다는 말에 감사한 마음으로 달려가서 한 냄비 가득 받아왔다. 그 댁에 갈 때 형님께서 만들어준 청국장 세 덩이와 선물로 들어온 양말을 가져다주었다. 나는 집에 돌아오면서 얻은 호박죽을 앞집에 한 그릇 덜어주고 왔다. 앞집에서는 요즘 과일이 맛있다며 복숭아 두 개를 주셨다. 잠깐 사이에 주고받은 것들은 음식인 동시에 이웃 사이의 정이며 사랑이다.
장석남 시인의 시 「수묵水墨정원 9 –번짐」의 일부를 감상해보자.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번져야 사랑’이라는 말은 습자지에 떨어진 한 방울의 먹물처럼 사랑으로 쫙 퍼지는 것을 말한다. 무엇을 만나든 쉽게 번지지 않는다는 것은 마음이 메말라간다는 신호다. 정이나 사랑이 부족하다는 뜻이다.
‘번짐’은 사랑의 마음을 재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다. 사람 안에서 감성이 움직이는 순간 사랑은 번지기 시작한다.
봉사와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감성주의자는 마음이 여리며 따뜻하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데 같은 봉사라 하더라도 협력조력자는 돕는 일을 아주 헌신적으로 한다. 완벽주의자는 명분이 있는 봉사활동을 좋아하는 편이다.
나눔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봉사의 방법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과 사랑을 베풀는 것이 아닌,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 전해줄 수 있는 ‘사랑 번짐 바이러스’는 각박한 세상을 따뜻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사랑바이러스가 습자지의 먹물처럼 곱게 스미고 아름답게 번진다면 삶이 따뜻해질 것이다. 장마가 지나고 햇살 가득한 세상처럼 각박한 사회가 분명 밝아질 것을 확신한다.
김종진 한국지문심리상담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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