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서 대전대 총장 |
필자가 몇 년 전 중국에 갔을 때 조선족 안내원의 의미 있는 멘트가 떠오른다. “상유정책(上有政策), 하유대책(下有對策)” 중국에서는 위에서 정부가 어떤 정책을 발표하면 아래에서 인민들은 이를 피해나갈 대책을 세운다는 것이다. 당시 교육행정을 맡고 있던 필자에게 이 말은 ‘우리에게도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 아닌가?’하는 느낌이 순간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교육정책, 부동산정책에 이러한 현상이 많이 나타나는 것으로 판단된다. 요즘 인사청문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위장전입, 불법농지매입, 다운계약서 등이 대표적으로 이런 예에 해당될 것이다.
사회적으로 무슨 문제가 생겨 정부가 고심 끝에 이에 대한 대책을 세워 정책으로 발표하면 이를 신뢰하고 수용하여 문제해결에 동참하기 보다는 새로운 정책 아래에서 또 다른 빈틈을 찾아내 개인적 이익을 얻고자 정책을 역으로 이용하거나 편법으로 이를 회피할 방도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정부정책의 미흡함에 대한 비난이 더해지고 정부는 빈틈이 없는 좀 더 촘촘하고 강력한 새로운 정책을 찾아 나서고 국민들은 또다시 이를 회피할 대책을 세우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는 것이다. 물론 최고의 정책은 이러한 문제점까지도 감안해 처음부터 완벽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어야 하겠지만 세상에 그런 완벽이란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다. 아무리 컴퓨터 보안대책을 잘 만들어도 이를 뚫고 들어오는 해킹세력이 있음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나라에서는 정부정책에 대한 회피, 불응, 역이용이 일부 소수의 국민들에 의해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사회정의, 공정, 신뢰의 측면에서 정부와 국민사이에 그리고 국민들 사이에 높은 장벽을 만들게 된다. 이제 정부와 국민들은 완벽한 정책이란 존재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사회적 합의수준의 정책이 만들어지면 이를 수용하고 순응하는 분위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여기에는 언론들이 캠페인 등 중요한 역할을 해주어야만 한다. 이념적 갈등까지 커진 상황에서 쉽지 않은 일이지만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절차의 확립과 함께 그러한 수준의 차선책들을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차선의 정책이라 할지라도 자주 바꾸기 보다는 꾸준히 실천해 나감으로서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신뢰를 확보해 나가는 것이 보다 중요할 것이다. 국민들 역시 선진국으로서, 국격있는 국가의 국민으로서 양보와 절제, 타협과 수용이라는 미덕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우리 모두가 다 같이 편하고 웃으며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필자는 새로운 정부에서 추진하는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을 교육정책을 만들어내기 위한 <국가교육회의>의 설치, 운영’에 대해 기대하는 바가 크다. 교육정책은 언젠가부터 이념대립의 가장 첨예한 영역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사회계층, 거주 지역, 자녀의 학교성적 등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져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기가 정말 어려워진 분야가 됐다. 이런 연유로 교육정책은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는 고사하고 가장 자주 바뀌는 정책으로 비판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미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자사고·특목고 폐지, 수능 절대평가 등 논란과 혼선이 야기되고 있다. 서둘기보다 사회적 합의를 이루어내는 절차를 먼저 확립하고 정권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을 정책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리하여 절차적 합리성을 바탕으로 국민들이 개별적 이익보다 미래사회에 적합한 정책인지를 판단하고 순응하도록 정책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변경된 정책 아래에서 국민들은 이를 피해나갈 대책을 세우고 정부는 또 다시 과외금지, 8학군대책, 선행학습금지대책과 같은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정책을 만들어내야 했던 악순환을 끝내길 기대한다.
이종서 대전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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