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소나기 쏟아지더니 어느새 뚝 그쳤다. 아무 기척 없이 와서 정신없이 퍼붓고는 내색도 않고 사라져 버렸다. 장마라 비가 오락가락했지만 그 이후 더 이상 비는 내리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덕분에 좁은 소제동 골목을 편히 오갈 수 있었고, 행사도 예정대로 잘 진행 되었다.
지난 8일 소나기 쏟아지던 날, 소제창작촌 레지던시 입주작가의 전시회 오프닝 행사가 있었다. 2012년부터 운영되고 있는 소제창작촌 사업은 시와 대전문화재단이 매년 작가들을 선별해 그들이 소제동 철도관사촌에 지내면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대전역 주변 관사촌들 중 1920년대와 30년대에 만든 집들이 아직도 온전히 남아있는 소제동, 그 의미있는 곳을 새롭게 살리기 위함이다.
올 봄부터 입주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6기 입주 작가들이 ‘녹음방초’란 타이틀을 달고 작품전시회를 열었다. ‘푸르게 우거진 그늘과 향기로운 풀’이라는 뜻처럼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100년이 다 되어 간다는 낡고 지친 건물을 싱그럽게 물들이고 있었다. 세월의 늪에 잠겨있는 깊고 허름한 골목, 이제는 사라지고 무너질 것들만 남아 있는 오래된 골목길에 푸른 청춘들이 뿜어내는 예술의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그들은 지난 봄부터 내내 낡아지고 바래지는 이곳에서 생명을 찾고 예술의 빛을 키운 것이다. 씽크대 위를 장식한 쥐의 모형, 머리에 꽃을 꽂고 화사히 웃는 동네 아저씨의 사진, 나뭇가지가 얽혀 만들어진 들개, 눈물을 머금은 것 같은 누군가의 얼굴, 소제동을 노래한 시와 이야기들... 그들이 이곳에서 길어 올린 것들은 오래된 것에서의 새로움 들이었다.
전시회를 둘러보고 나서 서둘러 오프닝 행사장으로 가 보았다. 선풍기 몇 대가 부지런히 돌며 바람을 전해주고 있었고, 마을 어르신들과 아이들이 행사를 찾아온 외지인들과 함께 어우러져 골목 안을 채우고 있었다. 예전 우물이 있었다는 자리가 무대가 되었고 창작촌 작가들이 한 명씩 소개되었다. 축하공연과 함께 작가들이 정성껏 차린 잔칫상까지 조촐하게 마련되자 너나 할 것 없이 흥이 올랐다. 바로 그 즈음, 무대 바로 옆에 자리한 청양슈퍼 사장님이 등장하셔서 그 유명한 기타 솜씨를 뽐내며 열정적인 연주를 해주셨다. 그 곡에 맞춰 현대 무용을 하는 청년의 즉흥 공연이 이어지기도 했고 흥을 주체 못하신 청양슈퍼 사장님은 앵콜곡으로 기타를 치며 개다리 춤을 추는 묘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모두가 흥겨웠던 오프닝 행사였다.
소제창작촌 오프닝행사가 끝나자 소나기 같이 모든 게 사라져갔다. 한꺼번에 쏟아진 많은 사람들과 그들이 왁자하게 주고받던 많은 이야기들은 소나기처럼 갑자기 다 가버렸다. 골목길은 다시 고요해지고 텅 비어 버렸다. 하지만 소나기 지나간 자리는 그 전과는 분명히 달랐다. 이제 소제동이 오래된 골목길으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푸른 청춘들의 예술의 향기 속에서, 청양슈퍼 아저씨의 녹슬지 않는 흥 속에서, 아프고 쓸쓸한 기억을 묻고 새로이 돋아나는 푸른 잎들을 보게 된 것이다.
호수로 유명한 중국의 도시 소주(蘇州)를 닮았다 해서 이름 붙여진 소제호. 아름다운 연꽃들이 피어났고, 둥근 초가집 사이로 우암 송시열의 고택과 그가 만든 정자인 기국정이 있었던 그 호수는 일제강점기에 사라졌다. 2만평이나 되었다는 넓은 소제호를 메운 자리에 철도 노동자들의 숙소 관사촌이 세워졌다. 호수 위에 세워진 집들은 긴 세월의 물결을 견뎌내고는 골목길을 따라 물 흐르듯 담장을 맞대며 서 있다.
그 골목길 오래된 집들을 보며 누군가는 어릴 적 추억을 노래하고, 누군가는 가난하고 지쳤던 고달픈 삶을 떠올리고, 또 누군가는 소제호와 함께 우리의 얼을 파묻은 일제에 분노하기도 한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는 예술가의 시선으로 오래된 골목을 새롭게 만들어 내기도 한다. 추억이 묻힌 곳에서 내일을 찾는 소제창작촌 레지던시 작가들이다.
한소민 문화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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