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민대학에서 지인을 만나기 위해 필자가 사는 가수원동 육교 정류장에서 원내동 출발 급행버스1번을 탔다. 다음 정류장에 이르러 나이 지긋한 이가 올라탔는데 내 앞자리의 여성이 냉큼 일어나 자리를 비워 놓는 것이다. 노인이 “고맙다”고 한말씀 하시고 앉으셨으면 내 보기에는 좋으련만 아무 말도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는 내 목적지인 중구청역 정류장에 내리며 ‘기사님 고맙습니다’ 하려는데, 종전의 자리를 양보한 20대의 여성이 ‘기사님 감사합니다’ 인사를 꽤 높은 톤으로 하면서 내리는 것이 아닌가. 그 바람에 필자가 40여년 한때도 빼먹지 않고 하던 인사를 미처 하지도 못하고 귀신에 홀린 듯 서둘러 내렸다.
버스를 수없이 타고 내렸지만 가끔 올라 탈 때에 인사를 하는 경우는 들었다. 하지만 인사하기가 만만찮은 하출구가 버스 중간에 있어 웬만한 습관화가 안된 사람은 버스 기사님한테 진심어린 고마움의 수고한다는 ‘인사’를 드리기가 어려운 게 버스 구조상 현실이다.
버스에서 내린 걸어 가는 방향이 우연히도 필자와도 같았다. 하여 이 참으로 보기드문 실제 미모로도 아름다운 여인에게 ‘저기요’ 하고 잠시 불러서 어떻게 버스 기사님에게 주저없이 감사의 인사를 할 수 있었느냐고 또 언제부터 그리 해왔느냐고 묻고 싶었다. 아름다운 마음씨에 대해 칭송하고픈 마음에서. 그러나 끝내 하지 못했다.
두가지 까닭 때문이었다. 하나는 필자의 용기가 없어서이고, 또 하나는 몰인정해져가고 각박해져 가고 있어서 선의를 오해하는 까닭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선의가 전달되기도 전에 상대방으로 하여금 긴장과 오해를 일으킬 수 있고 요즘 시쳇말로 성과 관련된 일에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때도 이제도 후회되는 것은 그 아름다운 마음결을 가진 이를 나이 먹은 윗사람으로서 격려해서 그에게 세상은 그런 자기를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따뜻한 마음씨를 갖은 이들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 것이다.
참으로 우리가 사는 오늘의 이 나라 도덕과 윤리 인심이 이렇듯 바닥에 이르고 있다는 방증이다. 예전에는 인권이란 이름아래 성희로이니 학생인권이 없었어도 보기 좋은 사제동행이 상시였고, 여성인권이 그렇게 호들갑스럽고 떠들썩할 정도로 성문화가 퇴페적이 아니었다는 것이 필자의 기억이다.
‘빙기옥골(氷肌玉骨)’이 따로 없다. 이름도 모른다 주소도 모른다. 대전에 그것도 서구나 유성구에 살고 있는 제대로 된 집안에서 지내는 바르게 성장한 모름지기 최고의 ‘아름다운 여인’, ‘으뜸의 아가씨’가 아닐까 여겨진다.
이 글이 성도 이름도 주소도 모르고 말도 건네보지 못한 미지의 실로 ‘빙기옥골’의 아름다운 여인. 아가씨에게 따뜻한 마음으로 써 보내는 감사와 고마움의 편지글이라 여겼으면 다행이겠다. 아름다운 노릇이든 그러하지 않은 노릇이든 누군가는 보고 느낀다는 것을 알고 가능하면 부디 좋은 일로 이 사회를 해맑게 만들어 나갔으면 다시 없이 좋겠다.
김선호 한밭대 전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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