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골환산성에서 바라본 대청호 |
제4회 백골산성(白骨山城-대전시 동구 신하동)은 ‘배골(梨洞)산성’이어야
대전-옥천간 32번 국도 세천고개에서 회인 방면 571번 지방도 호반길을 좇아 약 2km 정도 가다 보면 동구 신하동 배골(梨洞)에 이른다. 절골 간판이 서 있는 곳에서 하차 우측 백골산 정상에 백골산성이 있다. 배골에서 곧장 능선을 향해 오른다. 산은 표고 200여 m 정도로 높지는 않으므로 쉽게 성의 남쪽 출입구에 다다른다. 산성까지 길이 잘 나 오르기 어렵지 않다.
백골산성은 나지막한 산 정상부를 테처럼 둘러싼 테뫼식 석축 산성이지만 성벽은 대부분 파손되어 흔적조차 찾기 어려운 상태로 산성에 대한 기대감은 크게 갖지 않는 게 좋다.
북으로는 대청호 전체가 눈에 들어오고, 호수 건너 서쪽에는 계족산 방면 산들이 첩첩하다. 동쪽 계곡 건너 약 2km 정도에 환산산성 5보루이자 정상이 마치 동생이 키 큰 형을 올려다보듯이 이 산을 굽어본다.
삼국시대에는 보은 화인방면에서 회덕, 웅진 방면으로 진출하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통로였기도 했다. 다만 남쪽에 정교하지는 않지만 비교적 네모지게 다듬어 정연하게 쌓은 성돌 몇 개가 1.5m 정도 남아서 축성 기법과 흔적을 알려 준다. 남북 능선을 통해 드나들 수 있어 문지나 특별한 시설의 유지는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현재 민묘가 있는 정상의 평탄한 곳은 건물이 있었던 곳으로 추측된다.
▲ 백골산성 잔존부 |
백골산성은 삼국시대 격전장답게 과거에 해골들이 많이 발굴돼서 붙여진 것이라는 전설도 있고 정황상으로 보아도 이 일대에서 전개됐던 치열한 전투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다.
그러면 백골산성의 무서운 이름은 진실한 것인가? 이 이름은 1914년 일제시대 지도에서 한자로 등장한다. 아마 배골(梨洞-발음상 배꼴)인 고유 지명을 전설과 관계지어 한자화한 것으로 보인다. 다분히 일본의 정책에 따른 의도성이 작용했을 것이다. 산의 이름과 성의 이름도 바뀌어야 할 것이다.
대청호의 푸른 물과 시원스런 정경은 등산의 피로를 한꺼번에 확 씻어 준다. 계족산 위의 낙조와 실루엣도 일품이다.
조영연 / ‘시간따라 길따라 다시 밟는 산성과 백제 뒷이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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