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애의 미술읽기] 보헤미아의 메세나로 명성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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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애의 미술읽기] 보헤미아의 메세나로 명성 자자

9. 예술을 사랑한 ‘프라하의 루돌프’

  • 승인 2017-07-07 00:01
  • 정경애 보다아트센터 관장정경애 보다아트센터 관장
▲ 주세페 아르침볼도 <베르툼누스 Vertumnus> 1590년, Oil on panel, 68 x 56cm, 스코클로스터 성, 스웨덴
▲ 주세페 아르침볼도 <베르툼누스 Vertumnus> 1590년, Oil on panel, 68 x 56cm, 스코클로스터 성, 스웨덴


루돌프 2세(Rudolf II, 1552~1612)는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으로부터 대부분의 영지를 물려받은 막강한 권력을 소유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다.

24세부터 무려 36년간을 신성로마제국뿐만 아니라 보헤미아, 헝가리, 크로아티아의 왕으로 군림했지만 결코 유능한 군주는 아니었다. 보헤미아와 헝가리에서 펼친 가톨릭 강화정책은 온갖 반발을 불러일으켰고 13년 동안이나 계속된 오스만 튀르크와의 전쟁도 실패였다. 거기에다 합스부르크 왕가와 형제들과의 불화는 그를 이름뿐인 무력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로 만들었고 말년에는 동생 마티아스에게 모든 직위와 권력을 넘겨야 했다.

왕위 계승자인 루돌프는 후계자 교육을 받기 위해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 외가인 스페인으로 갔다. 거기서 8년을 머물면서 외삼촌인 펠리페 2세로부터 가톨릭교회의 원칙에 따라 엄격한 교육을 받았다. 보수적이고 엄격한 외삼촌의 강압적인 교육은 루돌프의 성장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스페인식 복장과 스페인 왕궁 예법을 특히 좋아한 루돌프는 군주로서의 풍부한 지식과 재능을 충분히 교육 받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살벌한 스페인 궁정 분위기에서 살아남기 위해 터득한 방법이겠지만 루돌프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보다 묵묵히 다른 이의 말을 듣는 내성적이고 비밀스러운 성격도 형성되었다.

예술과 과학을 사랑했던 루돌프는 황제가 되면서 수도를 비엔나에서 프라하로 옮겼다. 그리고는 프라하 궁정을 새로운 문화의 장으로 만들어 나가기 시작했다.

혁신적인 이론을 내세운 자연과학자, 천문학자, 철학자, 연금술사는 물론이고 당대 전위화가였던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한스 폰 아헨(Hans von Aachen) 등을 프라하 궁으로 불러들였다. 뿐만 아니라 궁전을 장식할 수 있는 귀하고 이상한 물건과 희귀 동식물들을 무조건 사들였다. 그리하여 당시 루돌프의 갤러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갤러리로 자리를 잡았다.

이미 당대에‘보헤미아의 메세나(Maecenas)’이자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예술 후원자’로 명성이 자자했던 루돌프 덕분에 이 시기의 프라하는 일약 예술의 새로운 중심 무대로 떠올랐다. 프라하가 서유럽 정치와 문화의 주변부에서 사실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황금시대를 구가하게 된 것은 1600년경 전후 바로 루돌프 2세 치세 기간 동안이었다. 훗날 많은 학자들이 이 시기를 특별히 “루돌프의 프라하”라고 일컬었다.

루돌프는 단순히 자연을 충실히 재현한 예술보다는 그 대상 너머에 암시된 형이상학적인 의미의 가능성에 더욱 흥미를 가졌다. 자연이든 예술이든 모방이 아닌 표피 너머의 본질을 보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프라하는 자연에 대한 이상적인 모방을 추구했던 르네상스의 규범에서 벗어난 전혀 새로운 변화가 싹트기 시작했다.

이러한 루돌프의 독특한 예술적 취향과 생각을 실현할 적임자가 바로 주세페 아르침볼도(Giuseppe Arcimboldo 1527~1593)였다.

밀라노에서 유명한 장인의 아들로 태어난 아르침볼도는 내면에 잠자고 있던 기발함과 세상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열린 사고의 소유자였다. 그의 재능은 막시밀리안과 루돌프를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끼를 발산함으로써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36세 되던 1562년에 합스부르크가의 막시밀리안 2세(Maximilian Ⅱ)의 부름을 받고 비엔나로 간 회가는 그 후 25년 동안 막시밀리안과 그의 아들 루돌프를 위해 궁정화가로 일했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궁정화가처럼 선대 왕족의 초상화 작업이었으나, 이내 각 계절의 식물들을 사람의 머리 모양으로 모아 구성한 자신만의 특유한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다.
1569년 1월 1일에는 새해맞이 기념으로 막시밀리안 황제에게 각종 식물과 과일들로 조합해 만든 <사계절>과 동물과 식물, 생물과 무생물을 조합해 독특한 이미지를 만들어낸 <사원소>를 선물하기도 했다.

특히 루돌프 황제를 로마신화에 나오는 계절의 신 베르툼누스(Vertumnus)로 변신한 초상화 한 점을 그렸다. 서른다섯의 젊은 황제를 수수와 포도, 밀 다발, 배, 멜론 등 표현하여 권위라고는 눈꼼 만큼도 없이 그려진 이 그림을 보고 사람들은 아르침볼도가 제정신이 아니라고 여길 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진작 본인은 당혹스러움과 난감함은커녕 진정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프라하 궁전이 떠나갈 만큼 박장대소했다고 한다.

아르침볼도는 우스꽝스럽고 저질스럽다고 여기는 이 그림 속에 루돌프를 전지전능한 지배자의 이미지와 대자연의 풍요와 새로운 황금시대를 구현하는 군주의 이미지를 담아내고자 했다. 그리고 루돌프는 그 메시지를 알아차렸다.

시대를 앞서가는 화가의 능력도 대단하지만 자신을 이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그리도록 허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 그림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축제 때 그림 속 인물의 모습으로 치장하고 나타난 루돌프 역시 대단한 문화 군주라 하겠다.

정경애 보다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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