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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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작품 <태풍이 지나가고>(2016)를 소개할까 합니다. 료타라는, 40줄을 바라보는 무명의 소설가 이야기입니다. 그는 문학상을 탔던 청년 시절을 잊지 못하고 위대한 작품을 꿈꿉니다. 그러나 현재는 흥신소 직원으로 의뢰인의 부탁을 받아 남의 뒤를 캐는 일을 합니다. 아내와는 이혼한 상태고, 아이가 하나 있지만 엄마와 살고 있어서 한 달에 한 번씩만 만납니다. 고향에는 어머니가 혼자 사십니다. 료타는 가끔 고향집을 찾지만 돌아가신 아버지가 남긴 물건 중에 값나가는 것이 없을까 찾아대는 궁상맞은 사내입니다. 심지어 헤어진 전처가 직장 상사와 좋게 지내는 낌새를 채고 질투하는 못난 모습도 보입니다.
▲ 영화 <태풍이 지나가고> 포스터 |
어느 날 고향의 어머니를 뵙기 위해 아들과 전처 그리고 료타가 함께 합니다. 원래는 저녁만 먹고 다시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갑자기 태풍이 붑니다. 어쩔 수 없이 하루 저녁을 함께 보내야 하는 상황. 료타가 보여주는 철부지 어른의 모습은 더없이 불편하지만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습니다. 그 누구도 꿈꾸던 삶만 살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태풍이 불던 날 밤 놀이터 미끄럼틀 아래를 찾아 우주를 꿈꾸던 소년이 어른이 됐습니다. 그러고는 “아빠는 뭐가 되고 싶었어? 되고 싶은 사람이 됐어?”라는 아들의 물음을 받습니다. 그는 한참을 뜸들이다 가까스로 “아빠는 아직 되지 못했어. 하지만 되고 못 되고는 문제가 아니란다. 그런 마음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느냐 하는 거지.”라고 대답합니다.
영화 속 카메라는 클로즈업으로 인물의 얼굴을 가까이 보여주기도 하고, 때로 멀찍이 떨어져 인물을 둘러싼 정황을 바라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에 깊이 개입하지 않습니다. 고향에 살며 아들 료타를 안쓰럽게 지켜보는 어머니와도 같습니다.
장마철입니다. 곧 태풍도 올 겁니다. 원치 않는 상황에 젖기도 하고, 삶의 위력에 휘청거리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삶은 계속됩니다. 그리고 우리에겐 어느 만큼의 위안이 필요합니다. 영화가 료타를 대하는 눈길처럼 그렇게 말입니다.
김대중(영화평론가/영화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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