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장 |
교육부의 지침에 따라 상대평가를 하다보니 A나 B를 받는 학생만 있는 것이 아니라 C나 D, 때로는 F를 받는 학생도 있다. 이론 수업에서야 적용하기 어렵지 않고 학생들도 자기가 시험이나 보고서를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이의를 제기하는 일이 적다.
하지만 실습 성적 평가에서는 그렇지 않다. 특히 중간 이상의 비슷비슷한 수준의 학생이 많은 경우 난감할 때가 적지 않다. 거의 모든 학생이 빠짐 없이 실습에 임하고, 성실한 태도로 실습 항목을 수행하고, 보고서도 나름대로 써냈는데 그 약간씩의 차이로 B도 아닌 C를 받으니 학생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보다 객관적으로 보정하기 위해 실습 퀴즈 등으로 보완하게 되고 결국은 암기력과 논리, 언어 능력이 우세한 학생이 또 좋은 점수를 받게 된다.
그렇게 문제가 되면 통과(Pass) 혹은 미통과(Fail)로 하라지만 이것은 평가의 잡음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지, 학업의 수준이나 향상 측면에서는 또 다른 문제를 가져온다. 그래서 교수들은 각 교과목의 핵심 역량이 무엇인지 그것을 어떻게 측정해야 공정한 평가가 되는지 고심한다. 하지만 무엇이던 제대로 하려면 많은 시간과 인력이 투입되어야 하고 심하게는 가르치고 배우는 시간보다 평가에 드는 시간이 더 커지기도 한다.
최근 4차 산업혁명 운운하는 제목의 세미나가 도처에서 열리고 있고, 변화무쌍한 이 시대에 우리가 대처하려면 무엇보다 교육이 중요하다고 한다. 교육부에서는 미래사회형 ‘창의융합 인재’를 키우겠다며 유연화, 자율화 개별화, 전문화, 인간화라는 5가지 키워드를 들고 있다. 사실 우리가 사는데는 모든 학생을 창의적 인재로 기를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여하간 교육부는 초중등 학교 학생들의 수업 선택권을 확대하고 대학처럼 학점제로 운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교육과정 운영 및 평가에 대한 교사의 자율성을 보장하고 국가가 정하기보다는 학교와 교사들에게 자율권을 부여하며, 시험이나 평가 없이 협력·프로젝트 학습으로 운영되는 모델을 국내에 도입할 것이고, 초ㆍ중등 소프트웨어교육을 필수화하고 지능정보 핵심 우수인재 양성을 위해서 초·중등 영재교육을 강화하며, 인간화 측면에서 인성·예술체육교육 활성화를 통해 기계가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가치를 키우는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한다.
그럴듯한 주장이다. 그리고 계획대로 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대와 소망 또한 간절하다. 하지만 이제까지 해왔던 교육 정책의 패턴을 보면 계획만 그럴듯한 것이 아닌가 무척 걱정도 된다. 1969년 일류학교니 뭐니 서열화를 개선한다는 취지로 중학교 입시를 무시험으로 바꾸고 이어서 고등학교 평준화까지 시도했지만 이후 학생들이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더 행복해지지도 않았고 학교 서열화도 여전하다. 오히려 나름 전통을 말하던 학교들의 특성마저 없어진 채 오로지 성적에 따라 줄서기를 하게 되었으니 말이다.
한편 유연화, 자율화, 개별화 대책은 학생 중심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교육기관이나 교육자들을 위해서도 지켜주어야 할 요소이다. 교육기관이 국가의 재정적 지원이나 권위에 길들여져서야 교권의 자율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상대적 평가라는 고정된 틀 속에서 창의적 인재를 기를 수 있을까? 평가를 위한 서류 작업에 지친 교육자에게 기존 틀에서 벗어나는 학생들을 지켜봐줄 여유가 있을까?
일찍이 창의성을 연구한 E. P. Torrance라는 학자에 따르면, 창의적인 아이들은 관찰하거나 듣는 행위 자체에 몰두하고, 질문하고, 권위 있는 의견에도 의문을 제기하며, 거의 관련 없는 생각들 사이에서 관계를 말하고, 어렵게 살아도 생기발랄하며, 새로움을 발견하는 경우 흥분하는 행동 경향을 가진다고 하였다. 그러니 좀 튀는 행동이어도 진정성이 있다면 이것도 인정해주는 유연한 평가를 할 수 있어야 하겠다. 그런 교육이 되도록 교육자의 융통성을 보장해주는 것도 유연화의 하나가 되어야 하겠다.
알다싶이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찾아내고 만들어내는 것만이 창조는 아니다. 어떤 사건이나 사물의 본질을 이해하고, 통합하여 새로운 관점이나 관계를 발견하는 것도 창의적 능력이다. 그러니 지금 자신이 알고 있는 것부터 제대로 아는 것도 중요하지 않겠는가. 산업혁명이라면 그저 기계화니 대량생산이니 정도를 생각하고 있는데 ‘4차 산업혁명’ 이라는 용어가 주는 충격에 멍해진다. 4차에 이르도록 1차니 2차 산업혁명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한 채 지낸 무지가 부끄럽다.
아, 상대적 평가로 불편해진 마음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에도 세상은 변하고 있다. 어떤 평가를 해야 급변하는 세상에서 우리 학생들이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필요한 디딤돌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하다보니 그 보다 먼저 앞날을 막는 걸림돌이 되는 평가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평가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고 더 힘차게 나갈 수 있는 평가가 되도록 해야겠다.
임숙빈 을지대학교 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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