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형사 공공변호인 제도’ 도입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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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 ‘형사 공공변호인 제도’ 도입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

  • 승인 2017-07-02 12:20
  • 신문게재 2017-07-03 23면
  • 조성천 변호사조성천 변호사
▲ 조성천 변호사
▲ 조성천 변호사
‘삼례 나라슈퍼 사건’은 1999년 2월6일 새벽 4시께 우석대학교 앞에 위치한 나라슈퍼에서 발생한 3인조 강도사건으로 당시 집주인이었던 유모씨가 질식사했다. 사건 발생 9일 후 강모씨 등 3명이 체포됐는데 모두 가난하고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청소년들이었다.

대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돼 징역 3년에서 6년의 수감생활을 마친 이들은 2015년 3월 ‘경찰의 강압수사 때문에 허위자백을 했다. 억울한 누명을 벗고 싶다’라며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고, 지난해 10월께 법원은 ‘당시 피고인들이 자백했던 범행 방법, 피해액 등의 진술이 객관적이고 합리적이지 못한 점을 감안할 때 피고인들이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함으로써 이들은 17년 만에 살인범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게 되었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은 2000년 8월 익산시 약촌오거리에서 택시기사가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려 사망한 사건으로, 용의자로 체포된 최모씨는 법원에서 징역 10년의 유죄가 확정돼 2010년 만기출소했다. 최씨가 당시 폭행 등 경찰의 강압수사에 허위자백했다는 점이 인정돼 지난해 법원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었다. ‘약촌오거리 살인사건’을 소재로 만든 영화가 바로 ‘재심’으로 관객들에게 공감과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문재인 정부의 인수위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는 이처럼 수사과정에서 발생하는 인권침해를 막는다는 명목에, 지난달 19일 현행 국선변호인 제도를 확대 개편해 경제력이 없는 피의자가 수사 단계부터 법률적 조력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형사 공공변호인 제도’를 2019년부터 도입하겠다고 밝혔고, 21일엔 이를 전담할 기구로 ‘변호처’를 신설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그런데 이러한 ‘형사 공공변호인 제도’의 도입 여부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소위 ‘공수처)의 신설, 검·경찰의 수사권 조정 문제 등과 함께 향후 법조계의 ‘뜨거운 감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형사 공공변호인 제도’는 국가가 공무원으로 임명한 변호사 또는 계약변호사를 형사 공공변호인으로 임명하고 수사기관에 배치해 무자력 피의자로 하여금 수사단계부터 공판단계까지 형사소추 전 과정에 걸쳐 국가 비용으로 형사 변호사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인데, 현행 국선변호 대상 범위를 모든 피의자로 확대해 정부가 직접 형사변호를 담당하겠다는 발상이다.

경제적 능력이 없는 피의자에 대해 수사단계에서부터 정부가 공공변호를 제공함으로써 수사단계에서의 인권 침해나 불법행위로부터 피의자를 보호함은 물론 방어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에는 어느 정도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첫째, 형사사법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찰,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행사하고, 피의자 및 피고인은 변호인을 통해 방어권을 행사하고, 법원은 심판자로서 재판권을 행사하는 것이 우리 형사사법시스템의 기본구조인데, 변호인 선임권을 행정부가 행사한다면 행정부가 기소권과 변호권을 모두 담당하는 꼴이 돼 형사사법시스템에 정면으로 반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둘째, 현행 국선변호 제도와 별다른 차이가 없기에 새로운 제도의 신설보단 제도의 보완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삼례 나라슈퍼 사건’,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 사건’은 모두 경찰 수사과정에서의 인권침해에 대해 전혀 대책이 없었다는 것인데, 올해 3월 1일부터 법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구속사건 논스톱 국선변호 제도’에 의하면 영장실질심사단계에서 선정된 국선변호인이 수사단계 및 공판단계까지 변호활동을 수행하기에 구속 상태의 수사단계에서 피의자에게 실질적인 변호인 조력을 받을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있다. 만일 위 ‘구속사건 논스톱 국선변호 제도’가 피의자의 인권보장에 다소 미흡하다고 판단되면 그 대상을 ‘체포’된 피의자로 확대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셋째, 4500억원 이상의 엄청난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재원 마련도 문제이거니와 필요성에도 다소 의문이 있다. 현행 국선변호 제도의 운영에 소요되는 예산이 약 450억원 정도인데, ‘형사 공공변호인 제도’를 도입하면 위 금액의 10배~20배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의 문제가 생긴다. 형사재판에서 무죄율이 1~2%에 불과한 우리 사법현실에서 98~99%의 범죄자를 위해 막대한 국민의 혈세를 낭비할 필요가 있느냐는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된다.

결론적으로 ‘형사 공공변호인 제도’의 도입 취지는 어느 정도 공감하나,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고 현행 국선변호 제도의 보완으로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 만큼, 섣부른 결론을 미리 도출해서는 안 되며, 법조계를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인의 충분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본다.

조성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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