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9. 플라워텔레스코프
AIPH총회 개막식은 오전 9시에 개최되었다.
회의장에 들어서던 주곤중은 입구에서부터 단상에 이르는 통로를 따라 꽃길을 만들고 있는 탐스러운 꽃봉오리들을 보았다.
파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로보텔 호텔에서 본 붉고 희고 파란색의 바로 그 꽃이었다.
그 꽃 화분 수십 개가 장내를 가득 장식하고 있었다.
프랑스…….
주곤중은 회의장으로 가면서 안내와 함께 회의주관을 하는 맡은 프랑스 대표 미셸에게 단상 주변에 장식되어 있는 저 꽃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넌지시 물었다.
미셸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대답했다.
“비바 디 프랑스(프랑스 만세).”
아마 저 꽃은 처음 보았을 겁니다. 최근 새롭게 개발된 품종이니까요.
철쭉꽃을 유전자 합성을 통해 개발한 겁니다.
아시겠지만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하는 프랑스 국기의 3색입니다. 국기의 3색을 상징하는 꽃으로 개발했기 때문에 꽃 이름을 ‘비바 디 프랑스’라고 한 겁니다.
프랑스 원예연구소에서 3년 동안 연구하여 개발에 성공했습니다.”
주곤중은 머리가 띵하게 얻어 맞은 것 같았다.
꽃의 유전자 합성기술이 여기까지 왔는가 싶었다.
주곤중의 보고차례가 되었다.
회의장의 불이 꺼지고 스크린이 내려졌다.
한국에서 제작되어 특별히 공수해 온 실크스크린이었다.
그리고 각국 대표들에게 편광안경이 제공되었다.
참석자들은 어리둥절해 했다. 주곤중은 단상의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컴퓨터 작동을 주문했다.
안면도 국제꽃박람회의 모습이 스크린에 동영상으로 비쳐졌다.
스크린을 주시하던 참석자들에게 모두 오금이 오그라드는 듯한 감각이 전해졌다.
영상물은 입체 3D로 제작되었다.
고속도 촬영에 의해 서서히 꽃망울을 터뜨리던 꽃이 갑자기 눈을 찌르듯이 앞으로 뻗어 나와 코 끝 위에서 꽃잎이 활짝 열리면서 꽃수술이 하늘로 솟아올랐다.
입체감이 기존의 동영상에서 볼 수 없던 다른 차원의 역동성을 폭발시켰다.
한국에서 개발한 디지털 기법을 활용한 입체카메라로 촬영한 영상이었다.
한국의 중소기업에서 개발한 3D 촬영카메라로 제작된 첨단 영상물이었다.
AIPH총회에서는 한국의 이 신개발 영상물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주곤중은 안면도 국제꽃박람회 개최계획을 길게 설명했다.
주제는 ‘꽃의 메시지’, 부제는 ‘꽃과 인간의 교감’…….
주곤중이 마련한 입체영상과 브리핑은 단연 압권이었다.
오전 회의를 끝낸 뒤 오찬장에 들어서는 주곤중을 유난히 반갑게 맞아주는 대표들이 있었다. 일본대표들이었다.
일본대표들은 안면도 꽃박람회 소개 영상이 대단히 훌륭했다며 한국의 디지털 기술과 영상수준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중 시즈오카에서 온 이소가와 원예특작부장이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안면도 꽃박람회의 주제가 ‘꽃의 메시지’라 하셨는데 무슨 꽃의 어떤 메시지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화훼전시연출의 전문가인 이소가와가 묻는 질문이라 주곤중은 잠시 긴장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지금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는 꽃의 5감을 표현해 보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꽃은 저마다 색깔이 다르지 않습니까?
또 꽃은 모양도 향기도, 그리고 가지고 있는 꿀의 맛도 각각 다릅니다.
왜 다를까요?
그것은 저마다 다른 꽃과 차별화하기 위해서 일겁니다.
그렇다면 꽃들은 모두 자신과 다른 꽃들과의 차이를 알고 있다는 것은 아닐까요?
꽃이 볼 수 있으니 꽃마다 모양이 다르고, 냄새를 맡는 후각이 있기 때문에 향기가 각각 다른 것이며, 식충식물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촉각과 음악을 듣는 청각도 가지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러한 꽃의 감각, 즉 꽃이 5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표현해 보면서 꽃을 인간과 동등하게 의인화하는 컨셉으로 연출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주곤중은 잠시 말을 끊고 먼 곳을 바라보다가 말을 이었다.
“호접난은 흔히들 나비모양과 닮아서 호접난이라 합니다마는, 우연히 나비모양과 닮은 것이 아니고, 나비를 유혹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나비모양의 꽃을 만든 겁니다.
▲ 호접난 |
인간의 눈으로는 한 가지 색깔의 꽃으로 보이지만, 자외선 스펙트럼을 볼 수 있는 벌을 유인하기 위해 놀랍게도 자외선의 색조를 가지고 있는 꽃이 있지 않습니까?
옐로우 데이릴리라 하던가요?
벌의 눈에는 이 색조가 보여 꽃에 찾아듭니다. 이런 걸 보면, 꽃의 시각은 인간의 그것보다 몇 배나 더 발달해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러한 보이지 않는 자외선 스펙트럼의 문양을 카메라로 보일 수 있도록 한다면 대단히 재미있는 전시가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들을 관람객들에게 선보일 수 있도록 지금 구상중이지요.”
이소가와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다시 조용히 말을 하였다.
“시즈오카박람회 때도 그러한 시도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습니다.
저희들 구상과 흡사하군요.
한 가지 도움이 될까 싶어 말씀드린다면, 저희들은 그래서 주제관에 꽃과 대화를 할 수 있는 부츠를 설치했었습니다.
꽃에서도 인간의 뇌파 비슷한 파장이 나오고 있어 모니터에 표출시켜 보는 것이었지요.
우리는 그 기계를 ‘플라워텔레스코프’라고 했죠.”
“그런 기계가 있습니까? 어떤 원리입니까?”
“기계원리는 간단합니다. 뇌파측정기를 상상하면 됩니다.
인간의 뇌에는 뉴런활동에 의해 방출되는 전위(電位․ 단위전하가 갖는 위치에너지)와 자기장 같은 것이 있습니다.
뇌파측정기는 이러한 파장을 측정하는 기계지요.
식물에도 표출되는 파장이 있는데 뇌파를 측정하듯이 식물의 파장을 포착해 모니터에 연결하는 것이었지요.
재미있는 현상은 파장의 모양이 작동시키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게 나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관람객이 꽃 앞에서 손뼉을 치거나 음악을 틀어주면 파장이 나타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기도 했는데 어쨌든 그 파장의 모양도 조금씩 달랐습니다. ”
“플라워텔레스코프는 어디서 개발했습니까?”
“임차했습니다. 어느 시민이 전화를 했더군요.
플라워텔레스코프라는 기계가 있는데 활용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요.
즉시 가지고 와서 시연을 해보았는데 말씀드린 대로였습니다.
그래서 조건을 맞춰 임차해 박람회 기간에 활용했습니다. ”
“그 기계를 개발한 사람을 아십니까? 참고로 알아두면 좋겠군요. ”
“물론이지요. 앞으로 2년 뒤면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 테니 적절히 활용하면 시즈오카보다 더 내용이 알찬 컨셉을 구현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요.”
“감사합니다. 개발한 분 연락처와 이름을 좀 가르쳐 주시면 저희들 쪽에서 연락해 보겠습니다.”
“그런데 개발한 분은 저희들도 모릅니다. 다만 그 분의 매니저라는 분하고 접촉했을 뿐이니까요.
그 쪽에서는 개발한 분에 대해서는 공개를 매우 꺼린다고 해서요.
언론에서도 몇 차례 개발자를 인터뷰하려고 시도했는데 끝까지 성사를 못했더군요.
좀 독특한 분인 것 같습니다.
매니저 이름은 후루마쓰 나리꼬입니다.”
그러면서 주소와 전화번호 등을 가르쳐 주었다. 여자이름이다.
호기심이 부쩍 당겼다.
후루마쓰 나리꼬, 후루마쓰 나리꼬…….(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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