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온종일 비가 내렸다.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는 요즘 모처럼 내리는 빗소리는 고운 사랑의 소리다. 바싹 메말랐던 대지가 물기를 머금었고 농작물은 생기를 되찾았다. 저수지의 수위가 조금씩 올라가는 것처럼 사랑의 눈금도 조금씩 올라간다. 가뭄에 농부들의 입 꼬리는 올라가고 웃음꽃이 피어난다.
가뭄이 극심한 상황, 때맞춰 내린 고마운 비. 메말라가는 대지를 적시는 단비는 사랑이다. 마음이 괴로울 때 따듯한 말 한마디도 사랑이다. 메마른 논과 밭에 촉촉이 스며드는 단비와 메마른 마음에 살포시 스며드는 사랑의 마음은 같을 것이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을 줄 안다’는 말이 있다.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은 사랑을 베풀 줄 안다. 사랑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은 사랑을 베풀고 싶어도 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베풀지 못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남을 배려할 줄 아는 가정에서 자란 사람은 사랑의 감정을 표현할 줄 안다. 그러나 양육자에 따라 차이는 크다. 양육자가 감정표현에 엄격하면 자식도 감정표현에 엄격하고 무딜 수 있으며, 반대로 넘치는 감정표현으로 영향을 주었을 때는 사랑이 넘치는 형태로 나타난다.
배려에는 조건이 따른다. 그것은 자신에게 솔직해야 하고, 남과 대할 때 진심으로 상대방의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 것이며, 마지막으로 통찰력을 갖고 행동해야 하는 것이다.
「우동 한 그릇」은 ‘구리 료헤이’(栗良平)의 단편소설이다.
섣달 그믐날, 북해정(北海亭)이라는 우동집에 허름한 차림의 부인이 두 아들과 같이 와서 우동 1인분을 시킨다. 가게주인은 이들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표시나지 않게 1인분에 반 인분을 더 담아주는 배려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익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감동을 준다. 각박한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지혜와 배려를 일깨워주는 작품이다. 반 인분의 우동은 상대편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려는 가계주인의 지혜이고. 배려인 것이다. 그리고 그 우동은 사랑인 것이다. 만약 우동을 두 그릇에 나누어 주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매년 같은 날 찾아오던 세 사람은 어느 해인가부터 나타나지 않았지만 북해정 주인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기다리며 언제나 자리를 비워둔다.
기억이 흐릿해질 무렵, 세 사람은 말쑥한 모습으로 북해정을 찾아 주인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힘들었던 당시 따뜻한 배려를 잊지 않고 다시 찾아 은근한 고마움을 전하는 장면이 많은 사람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준다.
이처럼 배려는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된다. 진정한 배려란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배려는 상대를 존중하는 것이지 무조건 호의를 베푸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불편해 할 수가 있으며, 자존심을 건드릴 수도 있다.
「우동 한 그릇」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배려는 개인의 이익을 얻는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며 나아가 모두 함께 살아갈 길을 찾는 상생의 길로 들어서는 첫걸음인 것이다.
삭막한 현실에서 감격에 굶주린 현대인의 차가운 마음을 녹여주는 인간미가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김종진 한국지문심리상담진흥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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