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뭄에도 끊임없이 태어나고 자란다.
뽑아도 뽑아도 생기는 잡초를 또 뽑으며 마탁소는 짜증을 냈다.
스프링클러로 수목의 화초에게 물을 주면서 잡초에게 빼앗기는 한 방울의 물도 아까워 신경질을 냈다. 피같이 아까운 물…….
아직도 기억에 선명하다.
튜라플리네스에게 불의의 성희롱을 당한 마탁소는 그 후로 잠을 못자고 자꾸만 생생해지는 꿈을 되씹곤 하였다.
자기의 성기에 엎어졌던 꽃잎이랑, 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흐르던 붉은 혈액…….
식물도 혈액형이 있다? 마탁소는 슬며시 쓴웃음을 지었다.
예전에 일본 도호쿠 지방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죽은 사람이 사용한 베개에 묻은 핏자국의 혈액형을 조사하려고 약을 뿌렸더니 핏자국이 없는 부분에서 이상하게 AB형의 혈액이 반응했다. 경찰들은 범인의 혈액형일 것이라고 추측하고 흥분하는 가운데 베개를 정밀 조사하였다. 결과는 전혀 의외였다. 베개에서는 사람의 흔적은 없고, 꽃잎의 흔적만이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꽃을 이용한 살인. 아니면 범인이 꽃? 조사 결과의 발표는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베개 속에 들어있던 메밀껍질이 AB형의 혈액과 같은 반응을 나타냈다는 것이었다.
‘식물에도 혈액형이 있다.’
당시 언론은 이러한 헤드라인을 달아 대서특필했다.
인간의 혈액형을 조사할 때, 혈액에 항 B응집소를 보태면 응고하지 않고, 항A응집소를 보태면 응고하는 경우, 그 사람의 피는 A형이라고 판정한다. 그 반대의 경우는 B형이고, 어느 쪽의 응집소를 보태도 응집하는 경우는 AB형이다.
O형을 판정하기 위한 혈액의 응고를 살필 때는, O형인 사람의 피를 닭 등의 동물에 주사하여 거기서 생기는 항 O응집소(항 H응집소)를 쓴다.
이것과 마찬가지로 하여 항B, 항A 항H응집소 등을 각각의 식물을 짓이긴 수액(樹液)에다 섞어보면, 어느 때는 응고하고 어느 때는 응고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이들의 반응을 나타내는 식물에 대해서도 인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혈액형의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즉, A형은 식나무, 사스레피나무,
B형은 꽝꽝나무, 줄사철나무,
AB형은 메밀, 자두나무, 아왜나무 가막살나무,
O형은 무, 포도, 동백나무, 색단풍 등이다.
다시 말해 특정한 식물의 수액은 인간의 혈액형와 마찬가지로 반응하는데, 그것은 그 식물에 인간의 적혈구를 만들고 있는 당단백(당과 단백질이 결합한 것으로 혈액의 응고를 일으키게 하는 물질)과 같은 물질이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탁소는 학창시절 원예학을 공부할 때 하나의 에피소드로 배웠던 것이 느닷없이 생각났다.
식물과 피.
그 시절에 마탁소는 동물과 식물의 경계점은 무엇인가 하고 열심히 생각에 몰두한 적이 있었는데, 오늘 그 시절의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흡혈식물이 있는가? 고개를 끄덕였다.
관엽식물에 고기 핏물을 주면 아주 잘 자란다.
고기를 물에 담가 두면 핏물이 빠진다. 그 물을 관엽식물에 주면 철분이 풍부해 식물에 윤기가 흐르고 잘 자라게 되는 것이다.
흡혈이라는 것이 별 것은 아니다. 피의 영양소를 취하는 것일 뿐이다.
동물이 피를 섭취하면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식물이 피를 흡수한다면 기괴하게 여기는 것은 오히려 괴이한 발상이다.
피는 동물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동물만이 식물을 먹는 것이 아니다.
식물도 살기 위해 동물을 잡아먹는다.
식물에도 핏줄이 살아 흐른다…….
마탁소는 상념이 많아졌다.
하여도 지난밤의 꿈은 해괴했다. 누구에게 이야기하기도 망측스러운 꿈이다.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냐. 꿈의 메시지가 뭐란 말인가?
튜라플리네스란 꽃이 실제로 개발되었다는 것인가?
마탁소는 무엇인가 비밀의 방을 우연히 엿보다가 별안간 문이 닫혀진 느낌이었다. 잡초 몇 그루를 송두리째 뽑아 내동당질 쳤다.
다시 스프링클러의 노즐을 점검하면서, 조팝나무 숲을 지나, 시들하게 만발한 벚나무 꽃군을 돌아 나갔다.
할아비와 할미 장승을 입구로 하는 초화원을 건너면 유리온실이 나온다.
온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온실에서는 계절과 관계없이 사철의 꽃을 감상할 수 있도록 온도를 조절하고 있다.
특히 화초 중에 신품종을 위주로 전시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유전자 합성을 통한 감자와 토마토, 배추와 무를 한 줄기에서 열게 하는 시험재배를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과거에도 있었던 것이고, 마탁소가 구상하고 있는 것은 보다 야심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어 줄기식물을 복합적으로 합성하는 계획인데, 나팔꽃 줄기에 호박, 수세미, 오이가 열리면서 이들 줄기마다 각각의 꽃이 피어나는 그러한 합성계획 같은 것이었다.
한 가닥의 줄기가 뻗어가면서 마디마다 다른 열매와 각각 다른 색깔의 꽃이 맺혀지는 식물이 있다면, 문자 그대로 ‘꽃들의 합창’이 열리는 줄기라 할 것이었다.
아직까지 결과는 미지수다.
해바라기 꽃이 군생하고 있는 섹타를 지나게 되었다.
키가 큰 해바라기를 가정의 화단용 키 작은 단종품종으로 개량하기 위해 재배하고 있는 해바라기들이다.
고호의 그림에 나와 있는 해바라기 밭을 꽃박람회 기간 중에 연출하기 위해 구상하고 있는 것이었다.
해바라기는 제철이 아닌데도 온실효과를 통해 수십 종의 때 이른 꽃을 활짝들 피우고 있었다.
‘해바라기는 해가 그리워 해를 따라 얼굴을 돌리며 산다.’
어렸을 때 해바라기를 보면서 해주던 어른들의 얘기가 신기해서 해바라기 꽃만 보면 과연 해바라기가 해를 따라 꽃이 움직이는가 싶어 아침에 본 꽃을 저녁에 다시 보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때는 아무리 봐도 꽃이 해를 따라 움직이는지 안 움직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떤 때 보면 해를 따라 움직이는 것도 같고, 어떤 때 보면 아닌 것도 같고 해서 늘 아리송해 했었다.
그 의문은 대학에 가서야 풀렸다.
이름부터가 해를 바라다본다고 해서 '해바라기'. 영어명도 sunflower.
이름에서부터 해를 향해 움직이는 듯한 이미지가 배어 나오지만, 사실 해바라기 꽃은 반드시 남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으므로 흡사 태양을 향하고 있는 듯이 보여도 주의해서 관찰하면 해바라기 꽃은 아침, 낮, 저녁, 밤에도 같은 방향을 향해 피어 있고, 태양과 더불어 움직이는 일은 없다.
신기한 것은 꽃이 아니고, 잎이다.
아직 꽃도 달려 있지 않은 어린 해바라기를 관찰하면 잎의 끝 부분이 아침에는 동쪽, 낮에는 남쪽, 저녁에는 서쪽으로 향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아주 어린 떡잎 무렵의 해바라기에서도 볼 수 있고, 꽃이 피기 전의 녹색 봉오리에서도 볼 수 있다.
꽃은 태양을 향해 쫓아가지 않지만 어린 해바라기 잎 끝 부분이나 녹색 봉오리는 실제로 태양을 향해 쫓아간다.
더 신기한 일은, 해바라기 이파리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태양을 쫓아가다가 저녁에 태양이 서산으로 지게 되면, 이번에는 캄캄한 밤에 조용히 스스로 기수를 동쪽으로 향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떠오르는 태양이 어느 쪽에서 다시 솟는지 해바라기는 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아침에는 이파리가 완전히 동쪽을 향하여 원위치되면서 어둠 속에서 태양이 올라오는 것을 기다린다.
왜 해바라기는 그토록 태양을 오매불망하는 것일까?
논리적으로는, 해바라기는 다른 것에 비해 특별히 성장이 빠른 식물이므로 광합성을 하여 많은 양분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해바라기는 늘 태양을 향해 잎을 돌려 능률적으로 광합성을 하려 하는 것이라 한다.
꽃이 달려도 봉오리 때는 녹색을 하고 있으므로 광합성이 가능하다.
그러나 꽃이 피고 나면 황색이나 갈색으로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광합성을 할 수가 없다.
따라서 노랗게 된 꽃은 더 이상 태양을 쫓아가지 않는다.
정열적인 열대의 꽃, 해바라기.
마탁소는 해바라기만 보면 늘 정열적인 여배우의 이미지가 생각나곤 했다.
그럴 근거가 없음에도 왠지 두 눈이 큰 얼굴이 연상되곤 하는 것이다.
눈이 큰 둥근 얼굴이다 보니, 남국의 여인이 생각나는 것인가?
두 눈이 크고, 코는 오똑하면서 샛노란 금발에 한껏 웃는 활달한 표정, 육체파 몸매에 녹색과 노란색이 대담하게 무늬를 그리고 있는 섬유질의 원피스를 입고 있는 여인.
거기에 작열하는 태양이 내려 쪼이는 타이티 바닷가의 풍경이 있다면, 그것이 마탁소가 품고 있는 해바라기의 오리지날 이미지였다.
어렸을 적 인상을 되살리면서 해바라기 꽃 앞에서 한참동안이나 노란 꽃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노란색은 해바라기 색이 표준이다.
발걸음을 옮기던 마탁소가 무심코 뒤를 돌아보았다.
해바라기 꽃이 모두 자기를 향하고 있었다.
다시 해바라기 꽃으로 다가갔다.
그리곤 서서히 반대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발걸음을 옮기면서 꽃에 눈을 고정시키던 마탁소는 꽃이 자기를 따라 움직이는 지를 유심히 살폈다. 속도가 느려서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화단 끝까지 왔던 마탁소는, 느닷없이 꽃밭의 시작되는 부분으로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뒤돌아보았다. 꽃들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보았다.
해바라기 꽃들이 뛰는 속도에 맞추어 자기를 향해 일제히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 앉아버렸다.
튜라플리네스 꿈이 다시 생각났다.
꽃의 피와 꽃의 눈.
동물인가 식물인가.
물,물,물…… 목이 말랐다.
내가 태양도 아닌데, 그렇다면 물?
꽃들이 가뭄 속에서 물에 미쳐 버린 것인가?
그럴 리가 없다. 해바라기 꽃은 안 움직인다. 이파리라면 몰라도……
꽃이 움직이다니……
어지러웠다. 도대체 뭐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냐?
무슨 조화가 일어나고 있단 말이냐?
온실 안의 좌우 비율이 해바라기 꽃에 대한 착시를 일으키게 했나?
로마의 카톨릭 박물관에 있는 성당의 천장화가 생각났다. 천국에서 왕좌에 앉아 있는 예수를 그린 그림이다.
그 그림은 예수의 눈이 쳐다보고 있는 사람의 눈을 따라온다.
입구의 왼쪽에서 보면 오른쪽을 향해 있던 예수님이 오른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향하게 된다.
사진에도 있다.
원근법에 의해 정면으로 찍되, 좌우비율을 맞추어 특수촬영을 하면 그러한 착시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한다.
그런 것인가?
고개를 흔들며 온실을 나왔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아내였다.
밥을 훔쳐 먹다 들킨 소년마냥 흠칫 놀랐다.
어제 밤 꿈이 다시 생각난 것이다.
아내의 목소리는 밝았다.
집에 몇 시에 올거냐는 것이었다.
토요일이었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달력으로는 휴일이지만, 마탁소의 달력으로는 평일이다. 적어도 꽃박람회가 끝날 때까지는 그럴 터였다.
“아 오늘. 지금 막 출발하려고 해요. 오늘 아이들하고 저녁 같이 합시다.”
심란한 심사에 정말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아내의 목소리가 달떴다.
“정말? 좋아요. 빨리 오세요.”
사무실로 돌아와 직원들에게 모두들 토요일이니 일찍 집에 가서 쉬라고 했다.
그리고 모감주나무 숲에 들어갔다.
꽃이 피었을까? 꽃망울이라도 맺혔을까?
모감주나무는 눈치도 없이 혼자 푸르딩딩하게 서 있을 뿐, 장마를 몰고 온다는 꽃은 필 기미도 없었다.
마탁소는 팽하고 돌아서서 침을 탁 뱉았다.
그리고 쌩하고 차를 달려 서해안 고속도로로 달려 나갔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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