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용란(건신대학원대학교 총장) |
인생은 두려움의 연속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두려움 없이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두려움은 우리 모두에게 숙명처럼 따라 붙는 인생 길의 피할 수 없는 동반자이다. 그렇다면 두려움을 회피하는 것만 능사가 아니라, 오히려 그 정체를 파악해 다루는 지혜가 필요하지 않을까. 두려움이 무서운 것은 그 실체를 파악 조차하려 하지 않고 그냥 모호하고 흐리멍텅한 덩어리 자체에 압도돼 공포로 내몰려 자신을 파괴하는 상황이 돼버리는 것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생각과 감정은 아직 도착하지도 않은 사건과 일들에 대한 막연한 공포에서 온다. 마치 검은 상자 안에 움직이는 어떤 물체를 만져서 맞추는 게임할 때 손을 넣으며 느끼는 두려움처럼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 미리 앞서 걱정하는 마음은 이내 내가 해를 입거나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로 이어진다.
수 년 전 산 속에 있는 집에서 홀로 3일쯤 금식기도를 하며 머문 적이 있었다. 늦가을 쯤이었는데 이틀째 되는 밤이었다. 담벼락에서 둔중한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퍽하고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사람이 담을 넘는 소리 같았다. 잔뜩 긴장을 하고 있는데 또 한번 퍽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 밤 공포 속에서 이불을 끌어안고 어떻게 잠이들었는지, 아침이 되어 밖에 나가 보니 커다란 땡감들이 땅에 떨어져 있는 것이었다. 전날 밤 나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실체는 땡감 떨어지는 소리였다. 공포에 대한 사전적인 정의는 ‘특정한 사물이나 상황에 대해 극렬하면서 지속적으로 나타나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이다. 정신을 차리고 찬찬히 그리고 주도 면밀하게 들여다 보면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가 조금도 없었다는 것을 알게된다. ‘두려움은 무지에서 샘솟는다’는 말이 맞다.
두려움을 느끼게하는 정체를 파악하다보면 우리는 놀랍게도 두려움을 넘어서게하는 또 다른 삶의 긍정적인 요소들을 알게된다. 두려움이 공포가 되어 내 삶을 위협하고 파괴해 버릴 수도 있고, 똑같은 두려움이지만 그 원인과 실체를 알아내어 파악할 때 전혀 다른 삶의 질들을 경험하게 될 수 있다. 예컨대 두려움의 끝에서 한번도 시도해본적 없는 담대함과 용기를 내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며, 그동안 그렇게도 보이지 않던 소망의 빛이 전혀 예상치 않은 방향으로부터 비춰 오는 것을 발견한다. 두렵지 않으면 용기도 있을 수 없다. 용기라는 덕목은 두려움 끝에서 경험하는 삶의 소중한 가치이고 자산이다. 두려움을 넘어선 용기가 내면의 절제도, 어떤 상황에도 절망하지 않는 인내와 소망도 갖게하며, 자신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모험을 통한 인생의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한다.
두려움이 검고 깊은 입을 벌려 우리를 삼켜 버릴 수도 있고, 두려움 너머에서 경험할 수 있는 소망과 용기, 사랑과 절제, 인내의 미덕을 삶에 켜켜이 쌓아가며 풍요로운 삶을 살수 있게 하는 발판이 될 수 있다. 두려움을 몰아내어야 할 적으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야만적이고 거칠며 교만의 두터운 껍질들 갈아내는 시작점으로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두려움은 현재의 불안한 상태를 극복하여 새변화를 만들고, 긍정적이고 소망적인 행동을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기재다. 결국 두려움을 대하는 용기있는 태도는 일에 대한 두려움을 능력으로,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사랑의 실천으로 자신에 대한 두려움을 절제로 나아가게 한다. 두려움 너머의 삶을 바라볼수 있는 용기와 안목이 필요하다.
전용란(건신대학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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