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 데일리폴리 정치연구소장 (前 청와대 대통령 전담통역관) |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의 지도자나 대개 국가의 큰 재목(材木)으로 쓰일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그렇게 표현해왔다. 그런데 그 인재(人材)라 불리는 사람들이 역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제 그렇게 쓰임 받는 경우도 있었지만 반면에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국익에 도움이 되는 경우에는 긍정적인 경우이고 오히려 국익에 손실을 가져다주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물론 모든 일에는 찬반양론(贊反兩論)이 있을 수 있다. 국가의 지도자나 정치인들을 평가할 때 수혜를 입은 사람들은 긍정적인 평가를 할 것이고 반면에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했거나 오히려 한 정치인의 정책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두고두고 부정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어찌 보면 지극히 자명(自明)한 일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사에서 두고두고 존경받는 정치인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냥 생을 마치고 나서도 욕만 먹지 않는다면 그런대로 괜찮았던 정치인이다. 대부분의 큰 정치인들은 흔히 어린 시절부터 인재(人材)라는 말을 듣는다. 사람 보는 눈은 다 거기서 거기기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 인재라고 불리던 사람들이 정치판에 들어오면 인재(人災)가 되어버리는 게 문제다. 국가와 공익을 위해 역량을 발휘할 것으로 예상됐던 사람들이 그 위치에 서게 되면 오히려 국가와 공익에 해(害)가 된다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우리는 일을 할 인재(人材)가 필요한거지 일을 낼 인재(人災)가 필요한 게 아니다. 지방의회에 걸 맞는 사람이 있고, 자치단체장에 걸 맞는 사람이 있고, 중앙정치에 걸 맞는 사람이 있다. 모든 것이 자신의 그릇에 어울리지 않는 것을 담으려고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자꾸만 반복해서 인재(人災)가 만들어지는 것은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 국민들에게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운동경기를 해도 축구에는 축구선수가 필요하고 야구에는 야구선수가 필요하지 않나. 그런데 왜 우리는 각 지역마다 정해진 몇몇 선수들을 가지고 축구와 야구는 물론 체조와 격투기까지 출전시키기 위해 어울리지 않는 선수를 선발하고 있는 것일까. 현 시대는 왕정도 아니고 과거와 같이 무력을 기반으로 정권을 창출하는 원시적인 체계도 아니다. 대의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우리의 대변인을 선출하는 21세기 민주주의국가 아닌가.
특히,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의 잘못도 문제지만, 각 선거의 종류와 상황에 따라 그에 어울리지 않는 선수들을 선발하는 국민들의 책임도 크다. 선거가 단지 시험 보듯이 오지선다형 답안지 안에 무엇이든 적당히 찍어서 될 일은 아니지 않나. 주변에서 흔히들 국회의원이 지역구에 얼굴도 보이지 않는다는 푸념을 한다. 지역을 자주 살피고 시민들과 소통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중앙정치를 하며 입법을 하고 국가차원의 정책과 전국적인 민원을 처리해야 하는 국회의원이 지역구에만 항상 돌아다니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오히려 그런 국회의원은 중앙정치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것은 지방의회 의원들이 해야 할 일이다.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는 분명하게 그 역할과 목적이 구분되어 있다. 치과에 가서 복통을 치료해주지 않는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제 정치와 선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의식도 좀 개선되어야 한다. ‘정치에 참여하지 않는 벌 중 하나는 자신보다 저급한 사람들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플라톤의 말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해석해보자.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정치에 참여하는 경우 국민들의 손에 의해 잘못된 정치문화와 저급한 정치인 및 정치풍토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작금의 대한민국 현실이다.
지방의회 의원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있고, 자치단체장에게 기대해야 할 것이 있다. 그리고 중앙정치에서 입법과 국가전체를 아울러야 하는 국회의원에게 우리 지역만 지나치게 돌봐주길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집단이기주의의 극치가 아니겠나.
김민 데일리폴리 정치연구소장 (前 청와대 대통령 전담통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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