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고은 시인의 “그 꽃”이란 시가 가슴에 닿았다. 지리산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다 방문한 논개열사 생가를 둘러보다가 깨달았다. 삶의 끝에 서면 자신이 했던 어떤 일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좋을 때는 모두 옳게 보이지만 싫으면 모든 것이 나쁘게 보인다.
편견과 선입견이라는 사나운 개를 앞세워 꼬투리 하나라도 잡히면 나는 인정사정없이 헐뜯었다. 아는 만큼만 보이고 믿는 만큼 들린다고 하듯 보수집단은 믿을 것이 없다는 편견 속에서 살았다.
모든 것을 이념의 잣대로 재단하는 대한민국에서 살다 보니 편 가르기도 일상적이었다. 친일파를 끌어안은 이승만에서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으로 이어진 수구세력의 적폐에 신물이 나서 보수집단을 무조건 경멸의 대상으로 삼았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전통보수라면 서양문화에 오염된 진보보다 백배, 천배 났지만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
논개열사의 충절을 기리고자 2만여 평의 부지에 50억 원을 투자해 논개생가복원사업을 시작한 사람이 전두환 전 대통령이었다는 것을 알자 가슴이 뭉클했다. 광주민주항쟁을 빌미로 미워만 했던 전두환이 새롭게 느껴졌다.
'6시 내 고향' 방송을 통해 전두환이 1986년 장수군 장계면 대곡저수지 축조로 논개생가가 수몰되었고, 논개열사가 부군 최경회 장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관기로 위장해 왜군의 승전만찬에 참석해서 적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학자들을 불러 마을사람의 인터뷰가 사실임을 확인하고 긴급히 예산을 편성해 생가를 복원하는 등, 주촌 마을을 성역화했다. 생가복원뿐만 아니라 기념관, 단아정, 의랑루, 주논개 비, 최경회 비, 논개 부모 묘도 꾸몄다. 단아정은 우국단충(憂國丹忠)의 단(丹)과 달 속의 선녀 항아(姮娥)를 일컫는 아(娥)를 인용한 논개를 상징하는 정자이며 현판을 전두환이 직접 썼다.
▲ 논개기념관 모습. |
세상에 논개보다 더 위대한 여인은 없다. 신사임당이 오만 원 권이라면 논개는 오천만 원, 오억 원 짜리도 부족하다. 그러나
신사임당은 양반가문에서 태어나 이율곡이라는 인재를 낳았다고 추앙하고, 순국열사 논개는 기생이라고 공훈을 인정하지 않았다.
아직도 이 땅엔 이런 적폐가 유지되고 있다. 논개 열사의 성과 기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논개의 고장에 전두환의 현판이 걸렸다고 선거철만 되면 정치가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현판을 떼어내겠다는 공약을 내건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주논개를 여성 의병 1호로 인정하고 이에 상당한 공훈을 내려야한다. 전두환이 경상도도 아닌 전북 장수에 그 많은 돈을 쏟아 붓고 논개열사의 충절을 알리려 한 것은 무척 잘한 일이다. 지금의 잣대로 보면 50억 원이 하찮은 돈이지만 80년대임을 감안하면 아주 큰돈이다.
대한민국은 썩을 대로 썩었다. 한 가지만 마음에 안 들면 다 보이콧하는 관행에 산다. 99가지 잘해 준 사람도 한 가지만 잘못 하면 금방 토라진다. 내가 탈세를 하면 똑똑한 사람이고 남이 탈세를 하면 나쁜 사람이다.
사람마다 공과는 있다.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인사청문회를 보고 있으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는다. 공만 바라봐서도 안 되고, 과만 물고 늘어져도 안 된다. 장관들의 임명이 시급한데 정부도 국회도 모두 허술하다.
정부는 인사검증을 철저히 하지 않고 국회는 편 가르기에 정신이 없다. 여당은 제 식구 감싸기에 바쁘고 야당은 헐뜯기에 바쁘다. 이명박근혜 정부에선 늘 감싸주던 자유한국당이 이제 무서운 늑대로 변했다. 헐뜯기에 정신이 없었던 더불어민주당은 계속 능청만 떤다. 정책적 자질이나 도덕성 검증이 우선임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행적 외엔 관심이 없다.
강경화 외교장관 후보자를 두고 벌린 설전을 보면 기가 막힌다. 현 실정을 놓고 보면 위장전입 따윈 이야기 깜도 안 된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나라들의 수장은 역대 최악이다. 호랑이 같은 중국 시진핑 주석은 그래도 낫다. 독사보다 더 사악한 아베가 노려보고 있다. 늑대보다 간악하고 야비한 트럼프는 날로 협박수위를 높인다. 사자와 같은 김정은은 도발을 멈출 줄 모른다. 과연 강경화가 저들과 맞설 수 있겠는가? 오랜 경험과 담대한 추진력, 강한 돌파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고서는 결코 저들과 대적할 수 없다. 유엔에서 보낸 오랜 경험 따위로는 어림없다고 생각한다.
꽃밭을 보고 꽃을 고를 것인가, 꽃을 보고 꽃을 고를 것인가? 꽃을 보고 꽃을 고른다고 해도 향기로 판단할 것인가, 미적 기준으로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예쁜 꽃에는 향기가 없듯 겉이 화려한 사람에게 좋은 인성을 기대하는 것도 헛된 망상이다.
꽃밭을 보고 꽃을 고르는 사람은 정의롭지 못하다. 선거공약으로 내세운 공직배제 5대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하지만 코드인사도 안 되고 보은인사도 안 된다. 삼벌주의에 갇혀 선정하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학벌, 족벌, 지벌의 삼벌주의는 대한민국이 청산해야할 우선순위 1번 적폐이다. S, K, Y대출신이라고 다 위대한가?
같은 지역, 가까운 친척이라도 끝까지 내 편을 들지 않는다. 장관 후보자 대부분이 문재인 대통령 선거 캠프 인사들이라는 소리를 듣고 나는 가슴을 찢으며 개탄했다. 설사 그들이 출중한 능력을 지녔다고 하더라도 협치를 위해 적당한 선에서 조정해야한다.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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