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
상병수당은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제도이지만, 건강보험이라는 제도에 포함된 기능이다. OECD 국가는 대부분 실시하는 제도이고, 1952년 채택된 ILO의 사회보장 최저기준에 관한 조약도 상병수당 실시를 명시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에서 상병수당이 없는 유일한 나라인데, 상병수당 제도가 없다는 이유로 건강보험을 실시하지 않는 국가로 분류된 바도 있다.
2000년 1월 건강보험법을 개정할 때 상병수당을 명시하였지만, 실제 시행하지는 않았다. 이렇게 사문화되다 보니 보건복지부는 상병수당을 제외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상병수당과 유사한 제도로 산재보험법의 ‘휴업급여’와 근로기준법의 ‘유급 병가’가 있다. 직접적인 ‘업무관련 질병’에 국한하여 소득 상실분을 보전해 준다. 개별 기업이 기업복지 차원에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등에 따라 유급상병급여를 시행하기도 하지만, 기업별로 단체협약 내용이 다르고 급여수준이 차이가 크다.
산재로 승인된 질환으로 인해 요양하는 기간은 이로 인한 휴업의 대가로 휴업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전체 평균임금의 70%에 해당하는 금액을 입원이든 통원 치료든 상관없이 일을 못 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동안 받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산재신청을 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이나 불승인 통보를 받았을 경우 일을 하지 못하더라도 아무런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없다.
결국, 일을 할 수 없을 정도의 중증 질환이 발생하는 순간 막대한 의료비 부담과 실직으로 인한 소득 감소의 이중고를 갑작스럽게 맞게 된다. 중증 질환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요양이 필요한 질환의 경우에도 요양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빠르게 경제 활동에 복귀하기도 한다.
심지어 말기암 판정을 받고 힘든 항암 치료를 받으면서도 경제적 부담 때문에 직장을 쉽게 그만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현재 한국에서 이를 대비할 방법은 민간보험뿐이고 당연히 개인의 위험은 개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상병수당을 지급하지 않다 보니, 환자들이 질병 때문에 소득을 상실하면 소득 보전 수단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건강보험 보장성이 낮은 상태에서 소득 상실은 빈곤과 가계파탄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2010년 국가암관리사업 모니터링 조사에 따르면, 암 진단 전에 직업을 가지고 있던 대상자 261명 중에서 진단 후에도 직업을 유지하는 경우는 16.5%(43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고, 10명 중 8명(83.5%)은 암으로 생계수단을 잃고 소득을 상실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또한,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재난적 의료비 지출이 가구경제에 미치는 영향보고서에 따르면, 재난적 의료비가 발생한 가구는 그렇지 않은 가구에 비해 빈곤에 빠질 확률이 1.423배 높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언제까지나 이런 상태를 방치할 수는 없다. 각자 알아서 민간보험으로 해결하라고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일종의 책임방기이다.
새 정부는 환자 치료에 필요한 비급여도 건강보험으로 보장하고, 15세 이하 아동 입원진료비를 5% 이하로 인하하는 어린이 입원진료비 국가책임제도를 추진하고, 본인부담 상한기준도 낮출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국민건강보험 보장성이 적정 수준으로 올라서고 나면, 질병으로 인한 소득 상실을 보전하는 상병수당을 실시할 방안을 준비해야 한다.
국민건강보험제도가 의료비 부담 보장이라는 한계를 넘어 질병 때문에 발생하는 소득상실까지 보장할 수 있는 선진제도로 나아갈 길을 만들어야 한다.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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