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성원 한국한의학연구원 미병연구단 책임연구원 |
실제로 기온이 낮아지면 신체는 생명유지에 중요한 심장 주변부의 체온을 지키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신체 말단부인 손과 발은 차가워지게 된다. 그래서 겨울이 되면 사람들은 따뜻한 장갑과 두툼한 양말을 찾는 것이다. 다만, 복부에 지방이 쌓이면 체내의 열이 신체 말단부에서 발산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손발이 따뜻해지게 된다. 하지만 수족냉증이 있는 사람들은 낮아진 기온에 의한 신체 말단부의 체온 저하 반응이 과도하게 일어나게 되며, 심지어 일부 소수의 사람들은 손발 체온이 그리 낮지도 않은데도 불구하고 손발이 차게 느껴지기도 한다. 남성보다는 여성에서 수족냉증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며 여성의 30%가 넘는 사람들이 이 고통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의학연 미병연구단은 최근 보완대체의학 분야 국제학술지 ‘BMC Complementary and Alternative Medicine’에 수족냉증으로 불편을 겪는 여성에게 위안이 되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수족냉증을 겪는 여성이 심혈관 대사성 질환의 지표인 대사증후군의 발생 빈도가 낮으며, 특히 허리-엉덩이 둘레비가 크면서 수족냉증이 있는 여성들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대사증후군 위험도가 낮게 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다.
대사증후군의 5대 위험 요인별(복부 비만, 높은 중성지방, 낮은 HDL 콜레스테롤, 고혈압, 고혈당) 분석에서는, 수족냉증을 호소하는 여성의 경우, 고지혈증이나 고혈압에 대한 위험도가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수족냉증 여성이 대사증후군 위험도가 낮은 이유가 혈청 내의 높은 아디포넥틴 농도 때문인 것으로 분석했다. 아디포넥틴은 지방세포에서 발현되며 비만이나 당뇨와 같은 만성 질환의 위험을 낮춰주는 몸에 좋은 사이토카인이다. 체내 열 발생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혈압이나 중성지방, 체질량지수를 보정하더라도, 수족냉증 여성에서는 아디포넥틴의 농도가 높게 유지되는 것으로 나왔다. 일반적으로 추위에 대응하기 위해 교감신경 활성화를 통해 신체가 열을 내는 과정에서 아디포넥틴의 양이 감소한다고 보지만, 수족냉증 여성은 반대로 아디포넥틴의 양이 감소하지 않아 추위에 대한 대응이 잘 안 되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한의학에서는 수족냉증을 주로 한증(寒證)으로 보고, 경락의 기혈순환 개선에 도움이 되는 침이나 뜸, 한약을 이용하여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수족냉증 또는 한증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기는 쉽지 않아 환자의 주관적인 호소에 많이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제한점이 있지만, 한의학연은 한열의 진단을 유전체 기반의 신뢰도 높은 방법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논문 게재 후 스위스의 조셉 플래머 박사(의사/안과학)로부터 이메일 한통이 왔다. 플래머 증후군(Flammer Syndrome: 플래머 교수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증후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왜 대사증후군 위험이 낮은가에 대해 논문이 설명을 해주고 있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전했다. 플래머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이 가장 빈번하게 호소하는 증상이 손발이 차갑다는 것이었고, 스위스 연구진은 플래머 증후군과 녹내장 같은 안과 질환을 연결해 임상에 활용하고 있었다.
한의학의 한증(寒證)연구의 대상이었던 수족냉증으로부터 시작된 연구가 멀리 유럽의 의료진에게도 주목할 만한 현상이라는 점이 새삼 반갑게 느껴졌고, 우리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규명하고 건강한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목적 아래에서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아우르는 통합의학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차성원 한국한의학연구원 미병연구단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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