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궂은비가 내렸다. 태종의 제삿날이다. 옛날부터 비가 내렸다.” 이는 태종우이다.
한국고전종합DB에서 찾아보면, 이순신보다 한 세대 앞 인물인 이행의 ‘기쁜 비’라는 시에 언급된 것이 가장 이르다. 이순신 시대 기록에도 태종우가 나온다. ‘난중일기’에도 등장하는 고상안은 유래를 구체적으로 남겼다. “태종 말년에 비가 내리지 않아 오래 가물었다. 태종이 병석에 누어 탄식하며, ‘내가 죽어 하늘에 올라가면 하느님께 단비를 내려달라고 간청하겠다.’고 했다. 태종이 돌아가신 날, 흠뻑 내렸다. 즉 5월 10일이다. 매년 이날 많은 비가 내렸고, 맑은 날은 드물었다. ‘태종우’라고 부른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경종실록’ 경종 3년 5월 12일에, “이달 10일은 태종대왕의 제삿날이다. 이날은 예전부터 비가 많이 내렸다. 태종우라고 한다.”라고 처음 나온다. ‘영조실록’ 영조 40년 5월 10일에는 그날 비가 내리자, 영조는 “이는 조상의 영령(태종)이 내려주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몇몇 기록을 살펴보면, 태종우는 가뭄 해갈 문제만이 아니었다. 국가에 닥칠 재앙을 예견해 주는 조짐이기도 했다. 김매순은 ‘열양세시기’에서, 매년 태종의 제삿날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 비가 내렸는데, “선조 때인 임진년(1592년) 이전 수 년 전부터 영험이 줄어들었고, 이윽고 섬나라 오랑캐의 난이 일어났기에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다”라고 했다.
조선시대 사람들에게 음력 5월 10일에 내리는 태종우는 태종의 염원에 따라 당연히 내려야 할 비이다. 농사철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단비이다. 어느 한 해라도 건너뛰어서는 안 되는 비이다. 또 김매순이 태종우의 감소를 임진왜란 발생의 전조로 본 것처럼 국가에 닥칠 재앙과 관계가 있는 비이다. 그러나 김매순이 말한 태종우의 감소에 따른 불길한 조짐만큼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듯하다. ‘난중일기’의 기록을 보면, 1594년과 1597년에는 비가 내렸지만, 1593년과 1595년, 1596년은 맑았다. 내릴 때도 있고, 내리지 않을 때도 있었다. 태종우의 문제가 아니라, 변화하는 국제정세와 우리의 국력이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가뭄과 관련된 태종우만큼은 다르다. 5월의 비는 여전히 중요하다. 다만 지금은 조선시대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시대처럼 기우제를 지내거나, 또 태종처럼 절박하게 유언으로 남길 정도로 전근대적인 시대가 아니다. 마냥 태종우만 기다릴 수밖에 없는 시대도 아니다. 지금은 사람이 비를 만드는 시대, 인공강우의 시대이다. 1946년 미국에서 처음 성공한 이래, 다양한 나라들에서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활용하고 있다. 중국은 벌써 50여 년이나 되었다. 가뭄 해갈과 미세먼지 제거, 각종 국경일 행사에도 활용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의 맑은 하늘은 중국의 인공강우 기술 수준을 보여준다. 그 때 우리의 많은 국민들은 인공강우의 힘을 처음 보았고, 놀랐다. 그러나 우리는 그 후 10년이 다 되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그림의 떡에 불과한 수준인 듯하다.
올 가을, 기상청에서 인공강우 실험을 할 예정이라고 한다. 경기도는 미세먼지 해결방안을 찾기 위해 실험결과를 활용하려고 한다. 충청남도의 가뭄은 심각하다. 올해만이 아니다. 벌써 몇 년 째 농부와 도민들의 가슴을 바짝 태우고, 들판을 쩍쩍 갈라놓고 있다. 비를 만드는 세상이다. 비를 만드는 과학기술자가 있는 시대이다. 하늘만 바라보고 원망할 때가 아니다. 녹조라떼가 된 강물만 바라볼 때가 아니다. 과학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지방정부에서라도 인공강우 전문 기술과 관련 전문가인 레인메이커(rainmaker)를 적극 육성할 때이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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