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계림시 정부행사장에 나온 쫭족 소녀들/사진=김인환 |
그런데 국장은 전화기를 들더니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시작한다. 한 두마디 듣기에도 대단한 영어 실력이었다. 또 걱정이 뒤따른다.
만약에 영어를 못하는 직원이 전화를 받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국장은 한군데 통화를 끝내고 이어서 두 번째 다이얼을 돌린다. 그런 후 전화기를 내려 놓으며 환한 얼굴로 “OK."라고 큰 소리로 대답한다.
양 쪽에 누가 전화를 받았으며 또 무어라고 대답을 했는지 궁금해서 죽겠다. 국장은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밝은 모습으로 돌아가 오늘 저녁식사를 같이 하잔다.
그러면서 오후 6시까지 정문 앞으로 시간 지켜 나오란다.
비서실까지 따라 나오며 국장이 손을 내밀고 악수까지 청한다.
휘파람이라도 부르고 싶을만큼 뛸듯이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다.
나는 약속시간 한 시간 전부터 나와서 그를 기다렸다.
그리고 저녁값은 내가 내야지! 생각하며 1000위안(한화 약 18만원)을 별도로 챙겨 넣었다. 6시가 되자 국장이 나타났다. 그런데 그를 따라나온 일행이 무려 8명이나 된다.
주머니엔 1000위안 밖에 준비를 안 했는데 은근히 걱정이 앞선다.
국장이 앞장서서 인근의 식당들 중에서도 가장 큰 식당으로 들어간다. 1층은 커다란 홀로서 대중식당이고 2층은 20여 개의 방으로 되어있다. 방으로 들어오더니 국장이 일행들에게 나를 소개한다.
한국에서 오신 유명한 작가 선생님인데, 이 곳 쫭족자치구 소수민족들을 취재하러 나오셨습니다. 우리 다 같이 환영합시다. 하니까, 일행들은 일제히 일어나 우뢰같은 박수를 치며 “환잉, 환잉!” 하며 환호성이다. 나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국장이 일방적으로 음식을 주문한다. 허기야 나로서는 엄두도 안나는 음식주문이다.(중국에 와서 마음놓고 음식을 주문할 정도가 되면 그 사람은 충분히 중국에서 살 자격이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외국인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잠시 후 식탁 위로 음식들이 차려진다. 대충 보기에도 거의 20가지다. 그 후에도 몇 가지의 음식이 더 나왔다. 나는 은근히 겁이 나기 시작했다. 내가 준비해온 돈이 고작 1000위안 밖에 안되는데…….
술도 몇 병이 들어왔다. 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오기 시작했다.
일행들은 돌아가며 내게 술잔을 권한다. (에잇, 모르겠다. 될 대로 되겠지!) 술병을 자세히 보니까 53도 짜리다. 술 잔이 몇 순배 돌아가더니 한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시작한다. 중국엔 이미 식당마다 가라오케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옆에 있던 국장이 내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아까 사무실에서 한국에 전화를 걸었을 때의 얘기였다.
한국문인협회와 MBC 등 두 곳에 전화를 했었는데,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모두 다 나를 잘 알고 있더라면서 한국에서 꽤나 유명한 작가라는 얘기를 들었다며 오늘은 맘 놓고 술이나 마시잔다.
▲ 중국내 소수민족촌을 방문한 독일 친구들과 함께 한 필자<사진 왼쪽 끝>/사진=김인환 |
소수민족 취재를 언제 떠나겠느냐고 묻기에 내일이라도 좋다고 했더니, 그럼 내일 류저우(柳州)시 지방정부 문화국의 王국장을 찾아가란다. 전화로 이미 얘기를 다 해 놓았으니 걱정 말란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고 있다. 국장과 단 둘의 약속인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온 것은 중국의 습관이라는 것을 안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우선 식당에서의 음식들 양이 많고 주문하는 음식은 최소한 5종이다.
그렇다보니 양적으로는 넘쳐나게 마련이다.
게다가 음식문화를 무척 즐기는 일상생활이다 보니 우리들의 간단한 음식과 빨리빨리라는 습관과는 거리가 멀다.
점심식사는 보통 2시간이고 저녁식사는 아무리 짧아도 3시간 이상이다. 이들은 음식을 먹으며 환담을 즐기고 정을 나누며, 정보를 교환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음식을 즐기고 이야기를 즐기며, 인생을 즐기는 문화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중국의 음식문화가 부럽기까지 하다. (그날 저녁 음식값은 내가 지불했는데 그렇게 먹고 마셨는데도 모두 670위안이었다.)
<다음 주에 계속>
김인환 시인
김인환 시인은 시집<님의 마음에:1968년> (비가 내리는 :1970년) (다시 한밤에 돌아와:1973년) (시음집:1978년:한국 최초의 음반시집) (바람의 노래:1992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1998년) (낙엽이 되어보지 못한 그대는;2013년) 등의 시집과 방송칼럼집 (내일을 향하여), 시론집으로 (마두금을 어디서 찾나) 등이 있다. 1972년 부산 최초의 시 전문지를 발간한 바 있으며 MBC, KBS, 한국경제 등에서 30여 년 간 언론인으로 활약했다. 부산 크리스천 문인협회 회장, 중국 광동성 한인문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 문인협회, 현대시인협회,국제 펜클럽,대전 펜클럽 회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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