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희지 '가시리[single]' |
필자가 한국인이라서 그러하겠지만 우리 한국의 여인, 아내, 어머니는 참으로 슬기롭고 지고지순하며 담대하고 아름답다고 늘 여겨 오고 있는 것이 솔직한 피력이다. 특히 역사를 빛낸 여인상들을 보면 더욱 견고해진다. 모계사회나 부계사회, 과거나 현재도 여성의 역할과 才氣가 뛰어나다. 세계 골프계를 쥐락펴락하는 두터운 선수층과 우수성도 단연 여성 골프다. 단 한 가지 예만 들었지만 남성을 압도하는 예는 일일이 매거할 수가 없을 정도다.
다시 몸말로 들어가서 문학으로 본 한국을 이끌어갈 대표적인 여인상에서도 가부장이랍시고 바지저고리에 두루마기, 그리고 갓쓰고 에헴하며 근엄이나 떨면서 妻妾이나 거느리는 꼬락서니하곤. 게다가 심지어는 無爲徒食을 일삼는 게 고작인 자도 부지기 수인 것도 숨길 수 없는 우리의 지난 날 부끄러운 자화상이기도 했다. 물론 전체 중의 지극히 일부라고는 하지만.
자. 그럼 고려가요의 白眉요, 우리 고전문학의 꽃이랄 수 있는 ‘가시리’를 천착해 보자.
우선 작품을 소개하면
‘가시리’
가시리 가시리잇고 나난/ 바라고 가시리잇고 나난//
날러는 엇디 살라하고/ 바리고 가시리잇고 나난//
잡사와 두어리마나난/ 선하면 아니올세라//
셜온님 보내압노니 나난/ 가사난 닷 도셔 오쇼셔//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리의 ‘가시리’ 여인은 참으로 슬기롭기가 그지없는 여인이다. 사랑하던 사람이든, 一夫從死의 연을 맺은 낭군이든 그 이유야 무엇이든 굳게 믿었던 님이 떠난다 한다. 참으로 속좁은 인간이고, 배신의 인간이고, 야속한 사람이다. 4연 8구체의 이 노래에서 일단 이 여인은 오만 정을 잃게 만든 상대에게 ‘가려느냐, 나를 두고. 날더러는 어찌 살라하고 떠나려느냐’ 하며 1.2연 4구에 걸쳐 애소를 해본다. 상대의 뻔한 속은 다 읽으면서.
우리가 신파극 ‘이수일과 심순애’에서 익히 보아온 것과 같이 떠날려고 작심한 사람은 못말린다. 그 어느 누구도. 그런데 계속 붙잡고 늘어지는 것은 피해자만이 겪는 큰 수치일 뿐이고 보다 추해질 뿐이라는 것은 지난 날의 이 나라 이별사의 대세였음을 잘 안다.
보라. 우리의 참으로 영특한 ‘가시리’ 여인은 낚시꾼이 다잡은 고기를 일부러 힘빼기 위하여 줄을 풀어준다. 이렇듯이 어치피 떠날 사람 ‘슬기롭게’ 보내준다. 말로는 붙잡아 둘 수도 있고 떼를 쓸 수도 있지만 서운하게 여기시오면 아니 오실까 두렵다는 밑밥을 깔아 놓는다.
문제는 4연 첫句의 ‘셜온 님’의 주체가 누구냐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과서에서 도식적으로 피 교육자에게 주입되는 ‘주체’는 ‘버리고 떠나는 님’으로 설정된다. 일단은 사실이다.
그러나 좀 더 숙고해 보라. ‘어떤 얼치기가 자신이 버린 여인 앞으로 떠나자마자 다시 돌아 오겠는가’ 만일 이런 얼치기 연인이요, 낭군이라면 여인이 먼저 이 나약하고 못난 상대를 혼내 주고 버려야 마땅하리라. 사실 喪家에서 며느리와 딸을 구별하기는 것 그리 어렵지 않다고 한다. 소리 내어 우는 여인은 ‘며느리’이고, 몸으로 피눈물로 우는 여인은 ‘딸’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상식에 가깝듯이, 사실 별리의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는 주체는 통속적으로 볼 때 여인이다.
그러나 피해를 당하는 주체의 슬픔이 曲盡하면 나만 서러워하고 마음 아파해서 과연 나에게 무슨 득이 되겠는가 나를 버리고 간 사람은 나의 피멍든 가슴도 모른 채 행복에 젖어 있을 진데. 이리 되면 슬픔의 주체를 피해자인 ‘나’에서 ‘가해자’에로 넘기게 된다. 왜 떠나간 너 때문에 슬픔의 나날을 보내야 돼? 천만의 말씀. 정작 슬픔의 대상이 될 쪽은 ‘너’가 돼야 하는 감정의 옮김이 생기게 된다. 이것이 이른바 ‘자리바꿈’이다. 그래야만 자연스레, ‘어떤 이유로 떠났든 가시자 마자 곧 돌아서서 오십시오’ 라는 4연의 7.8구가 매끄럽게 풀이가 된다.
참으로 ‘가시리’ 여인의 슬기 놀랍지 않은가.
세월을 낚는 강태공 심리, 낚싯줄 당겼다 풀어줬다 하는 영특한 심리, 치맛자락의 너른 마음 이것이 우리 한국 여인 특히 안해(아내), 어머니들의 아름다움이요 슬기요 인내의 승리 계승의 유구한 표상이다. 실로 속 좁기 바지 끝만도 못한 남정네를 좌경천리안으로 끝내는 제자리로 돌려놓는 절의는 아마도 한국의 여인들만 이 가지고 있는 빛나는DNA가 아닐까.
마무리 말을 해보자. 과거 없는 현재 없고 현재 없는 미래 없듯이 문학은 시대상을 잘 반영한다. 우리의 문학작품을 통해서 우리 한국여인의 우수성과 슬기로움, 자애로움과 인내와 강건함과 절의를 보았다. 우리의 이러한 훌륭한 여인 특히 안해, 어머니들이 있어 이 나라가 이만큼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이 필자의 진솔한 견해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잘되는 집안은 안해요 어머니의 이루 말할 수 없는 수고와 희생 공로가 필연적인 요소로 작용한다. 또 각종 국가고사나 임용고시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단연 여성이다. 사시만 해도 그렇고 교육계 언론계 국방 예술 체육 모든 분야에서 한국을 빛내는 몀몀들은 대다수 우리의 우수항 여성들이다. 그러므로 현재, 아니 미래에 까지도 이 나라의 발전과 도약은 우리의 여성 특히 안해요 어머니들이 어떻게 중심을 잡고 슬기롭게 이끌어 나아가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찬언의 말이 아니다.
김선호 한밭대 전 인문대학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