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휼의 세상 거꾸로 보기] 땅을 다진 후 주춧돌을 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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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휼의 세상 거꾸로 보기] 땅을 다진 후 주춧돌을 놓자

  • 승인 2017-06-09 00:03
  • 이완순 소설가이완순 소설가
보수의 궤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시대흐름을 간과한 어리석음 탓도 크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사유화해 사익을 취하고 권력을 남용한 것에 대한 국민의 증오심이 지극하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발표한 한국갤럽여론조사에 의하면, 국민에게 “어느 정당을 지지합니까?”라고 물었을 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정의당의 지지율이 8%, 국민의당이 9%인데 반해 더불어민주당은 50%에 달했다. 보수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대구, 경북에서조차 더불어민주당을 이기지 못했다. 더불어민주당 34%, 바른정당 22%, 자유한국당 18%로 조사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도 국정수행을 잘하고 있다는 적극적 지지율이 84%에 이르러 역대 대통령 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자유한국당 지지층 가운데 44%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부정적 평가는 32%에 그쳤다.

보수층이 국태민안을 도외시하고 사익과 기득권 유지에 집착하다보니 국민에게 외면당하다 결국 몰락을 맞고 있는 것이다. 보수의 진정한 가치는 나라를 지키고 경제를 키우는 것인데 탐욕에 눈이 어두워 헛것만 보고 살았다. 소위 보수정부라던 이명박근혜 정부는 쓸데없는 일에 세월을 흘려보냈다. 이명박 정부는 사자방(4대강, 자원외교, 방위산업)에 수십조 원의 국고를 쏟아 부었지만 얻은 게 없고, 박근혜 정부는 최순실의 농단에 놀아나다 국가의 위상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이런 참담한 시기에도 보수층은 그들을 조력하거나 부추겼다. 나라님이 잘못을 하면 머뭇거리지 말고 간언을 하여 바로 세우는 것이 진정한 충(忠)이고 보수의 의무인데 전혀 그러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을 앞지른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잘해서라기보다 이명박근헤 정부의 적폐가 하나둘 드러남에 따라 보수에 등을 돌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지적, 문화적 자부심의 지표라고 하는 ‘아사히신문’이 “정말 겁나는 한국의 역사”라는 문구의 책 광고 하단에 “일본인은 이해하기 어려운 질투와 불만이 가득 찬 한국인의 정신성, 잇따른 대통령과 거대재벌 비리, 그 원인은 한국이 걸어온 역사 속에 있다”고 폄훼한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인종주의적 편견으로 무장한 자극적인 말이지만 돌아보면 모두가 허술했고, 우리가 잘못 산 게 맞다.

보수층이 진정성을 잃고 사익과 탐욕에 눈이 멀어 바르지 않았을 때에 꼭 민족적 위기가 닥쳤다. 임진왜란이 그랬고 병자호란도 그랬다. 서세동점의 위기 속에서 부국강병책이 시급함을 인식하고 고종황제가 1882년에 본격적으로 동도서기(東道西器)적 개혁에 나섰었으나 이루지 못해 참혹한 일제의 강점을 맞아야 했다. 고유의 제도와 사상인 도를 지키되 서구의 군사과학기술을 수용함으로써 국가체제를 유지하려는 동도서기정책이 숭유중도(崇儒重道)를 내세워 봉건적 지도체제를 유지하려는 보수의 탐욕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승만, 박정희로 이어지는 친일파의 집권과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은 말할 것도 없다. 소위 민주정부라고 하는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특별히 내놓을 만한 게 없다. 구조적 개혁 없이 겉만 번지르르한 서구의 정책을 덜컥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 후유증이 말하지 못할 만큼 심각하다. 외환위기 극복을 빌미로 들여온 노동의 유연성이 젊은이들의 꿈을 빼앗고, 취직, 결혼, 출산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장관이었던 김대중 정부에서 체결한 “신 한일어업협정”을 보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1965년 6월 22일 박정희 정부에서 체결한 “한일어업협정”의 ‘배타적 경제수역(EEZ)’에는 독도가 한국 측 경제수역 안에 있는데, 1999년 1월 22일에 국회를 통과한 “신 한일어업협정”에는 독도가 “한일 공동관리 수역”에 포함됐다. 제 15조에 “신 한일어업협정”은 어업에 관한 협정이고 양국의 국제법적 지위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명시했지만 전후맥락으로 보아 설득력이 매우 약하며 한일 간 법적분쟁의 여지를 남겨 놓았다. 배타적 경제수역의 해양경계획정에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독도인근수역을 애매모호한 중간수역으로 처리했다. 일본은 이를 빌미로 2015년 10월부터 독도인근수역에서 일본의 권익을 보호하고 강화하려는 “배타적 경제수역 권익보호 신 법안” 입법화를 추진하고 있다. 신 한일어업협정이 독도의 실효적 지배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는 셈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와 정책이라도 먼 미래를 내다보지 않거나 하부구조를 형성하지 않은 상태에서 들여오면 반드시 실패한다. 적폐 청산에 적극적인 것 같지만 문재인 정부가 그래서 불안하다. 인적쇄신을 먼저 하고 새로운 정책을 제시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적폐의 온상이었던 박근혜정부의 인사들이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그들에 반하는 정책을 들이밀면 그들의 도피나 은폐를 도와주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총리를 교체하지 않고 탄핵을 밀어붙여 황교안 권한대행이 범한 실책으로 인한 손해가 얼마나 큰가? 사드배치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대통령지정기록물 지정 등 수많은 과오를 범했다.

땅부터 다져놓고 궁을 지어야지 맨땅에 주춧돌을 놓고 어떻게 든든한 궁을 지을 수 있겠는가? 앞뒤좌우를 따져보지 않고 덜컥덜컥 시행하다가는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결국 실패한다. “콩밥 싸게 먹으면 똥 쌀 때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지 않은가.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 서두르지 말고 차근차근 진행할 필요가 있다.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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