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권력이란 생태 자체가 부조리나 부정부패에 의해 창출되는 것인가요? 권력 주변에는 똥파리만 꼬이는 것일까요? 유유상종, 그렇고 그런 사람끼리 이해타산이 맞아떨어져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요? 불행한 만남들의 군상일 뿐인가요?
삶은 만남의 연속입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만남이 대다수이지요. 그런가하면, 누구에게나 인생역정을 바꾼 의미 있는 만남들이 있습니다. 좀 생뚱맞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면 대통령이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조그만 사무실에서 만난 두 사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일국의 대통령이 된 사실은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계역사에 기록될 전무후무한일 아닌가요?
조선 역사를 살피다보면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위대한 만남을 알게 됩니다. 대단한 조우지요.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에 장영실을 곤장으로 징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세종실록95권, 96권에 있는 내용을 요약해 보면, 대호군(大護軍) 장영실의 감독하에 안여(安輿, 임금이 타는 수레)를 만들었는데, 견실하지 못하여 부러지고 허물어졌으므로 의금부에 내려 국문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장영실은 기생의 자식으로 동래현의 관노출신입니다. 능력이 탁월하여 태종 때부터 궁중 기술자로 일합니다. 세종이 그를 알아보고 3년 동안 중국으로 유학을 보내지요. 성군의 뜻을 헤아려 절차탁마한 결과, 그림자의 길이로 시간을 재는 해시계 앙부일구(1434), 자동 시보 장치가 달려있는 물시계 자격루(1434), 강물의 높이를 재는 수표(1441), 빗물의 양을 재는 세계최초의 우량계인 측우기(1441) 등을 만들어 냅니다. 특히 우량계는 서구보다 200년이나 앞서는 발명품입니다. 세계 최초의 기상관측기기이기도 합니다. 『승정원일기』에 기록한 강우량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며, 140년이란 가장 긴 기간의 연속관측 기록입니다.
위대한 과학자가 왜 곤장을 맞아야 했을까요? 정말로 수레를 부실하게 만든 탓일까요?
농사일을 하려면 각종 기기들뿐만 아니라 천문, 달력 등이 필요합니다. 당시에 중국에서 만든 ‘수시력’, ‘대통력’ 등이 있었지만 우리와 맞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농사짓는데 어려움이 있었겠지요. 이에 ‘칠정산(七政算)’ 이란 천문계산법으로 독자적인 천문, 달력 체계를 만듭니다. 1년을 365.2425일, 한 달을 29.530593일로 정했습니다. 이것은 현재의 기준과 소수점 6자리까지 일치하는 정확한 계산입니다.
그 시절 명나라는 천문을 보는 것이 황제의 권위라 생각했지요. 함부로 천문을 연구하는 것을 허용치 않았습니다. 그런 중국이, 조선이 몰래 만든 ‘칠정산’을 알게 됩니다. 마침, 조선을 들여다보니 한글을 창제했지요. 각종 신무기를 만들어 내지요. 과학기기들을 척척 만들고 있지요. 깜짝 놀라고 맙니다. 그 중심에 장영실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됩니다. 급기야 명나라로 장영실을 소환합니다. 죄를 물어 죽일 것을 안 세종대왕이 지혜를 발휘합니다. 그것이 죄를 만들어 먼저 징계하는 것이었지요. 이후로는 장영실에 대한 기록도 남기지 않습니다. 뜨거운 사랑과 배려이지요.
장영실뿐만 아닙니다. 세종대왕은 자신이 구상한 일에 필요한 조건과 능력 있는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등용하여 놀라운 업적을 쌓았습니다. 집현전 학사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과 빛나는 만남, 아름다운 만남, 행복한 만남, 상생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장영실이 세종대왕을 만나지 않았다면, 그 자신의 존재감이나 조선의 뛰어난 과학도 없었을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장영실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 위대성이 반감되었을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소중합니다. 누구나 소중한 것들과 만남을 지속합니다. 만나는 사람에게 얼마나 빛이 되었나? 얼마나 힘이 되었나? 얼마나 위로가 되었나를 생각해 봅니다. 국가의 조각을 비롯한 만사에 장영실과 세종대왕같이 서로를 북돋는 아름답고 위대한 만남, 상생의 만남을 꿈꿔 봅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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