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애의 미술읽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직접 붓시중을 들어준 화가, 티치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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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애의 미술읽기]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직접 붓시중을 들어준 화가, 티치아노

7. 최고 군주와 최고 화가의 만남, 카를 5세와 티치아노

  • 승인 2017-06-02 09:57
  • 정경애 보다아트센터 관장정경애 보다아트센터 관장
▲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Venus of Urbino> 1538년, 112.9 x 165.5 cm, 우피치미술관
▲ 티치아노 <우르비노의 비너스 Venus of Urbino> 1538년, 112.9 x 165.5 cm, 우피치미술관


서양미술사에서 피카소와 더불어 살아생전에 부와 명예를 누린 화가는 티치아노(Tiziano Vecellio, Titian, 1488~1576)이다. 북이탈리아 출신으로 베네치아에서 활동을 시작했지만 카를 5세나 프랑수아 1세를 비롯한 각 국의 군주들로부터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그는 전 유럽을 다니며 활동한 최초의 국제적인 화가였다.

티치아노는 베네치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화가였다. 북이탈리아 피에베 디 카도레에서 태어나 베네치아에서 활약했는데, 그 당시의 베네치아는 경제적, 문화적으로 황금기였다. 이러한 사회적 여건에 베네치아에는 네덜란드에서 전승된 유화기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르네상스의 본고장인 피렌체가 형태만을 중시한데 반해, 베네치아파는 사실적인 형태에 명쾌한 색채를 더해 화려하고 역동적인 그림이 성행했다. 이 기법은 다가올 바로크의 특징으로, 베네치아파를 확립하여 바로크의 선구자 역할을 했던 화가가 바로 티치아노였다.

베네치아에 작업장을 연 티치아노는 곧 유럽 전역의 군주들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화가로 발전했다. 그 중에서도 신성로마제국 황제였던 카를 5세와의 인연은 그를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품격 있는 화가로 만들었다. 언젠가 티치아노가 카를 5세의 초상화를 그리는 중에 실수로 붓을 땅에 떨어뜨린 적이 있었는데, 황제가 먼저 몸을 숙여 떨어진 붓을 줍고서는 건네주었다.

더욱 놀랄 일은 “티치아노 정도의 거장이라면 기꺼이 황제로부터 시중을 받을 자격이 있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때 티치아노가 느꼈을 정신적 감명은 물론 그의 위상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 되어 지금도 회자되는 일화가 되었다.

그러면 그의 후원자 카를 5세(Carlos V,1500~1558)는 누구인가? 한마다로 역사상 최고의 금수저 출신으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이자 스페인의 왕이었다.

친가로부터는 신성로마제국을 외가에서는 스페인과 그 식민지 아메리카를 물려받았다. 불행하게도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머니 후아나(Joanna)는 거의 미친 상태로 일생을 유폐되어 보내야했던 비운의 여인이었다. 후아나는 이슬람 세력을 스페인에서 몰아낸 아라곤의 페르디난드 2세와 카스티야의 이사벨라 1세 여왕의 따님이었다. 남편인 신성로마제국의 후계자인 미남왕 필립1세(Philip I The Handsome)을 너무나 사랑했던 후아나는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미친 후아나로 불릴 만큼 정상이 아니었다. 마음 둘 곳이 없었던 카를른 부인을 몹시 사랑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외모에 지적이고 영리했던 부인 이사벨라마저 그의 나이 39세에 잃고 말았다. 그 슬픔이 너무 커서 티치아노가 그려내는 그 훌륭한 초상화에서 조차 검은 옷을 입고 우울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이유이다.

그의 치세 40년 또한 결코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종교개혁의 여파로 카톨릭 신자인 그는 신교와 대항해야했고, 거대한 영토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전쟁을 치러야했다. 특히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는 사사건건 붙었다. 그러나 해가 지지 않는 스페인의 기틀을 만들어 스페인의 황금기를 예고한 최고의 군주였다.

그 와중에도 카를 5세는 엄청난 예술 마니아로 르네상스의 열렬한 후원자였다. 예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스페인을 새로운 예술의 중심지로 만들어 지금의 스페인이 관광대국이 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가 스페인으로 부임해 왔더니, 오랜 기간 그들을 지배했던 이슬람의 흔적을 지우려는 국토회복운동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문화에 깊이 감명을 받은 카를은 자신이 카톨릭 신자임에도 불구하고 이슬람문화재 훼손 금지령을 내렸다. 이 금지령으로 그라나다의 알함브라 궁전을 비롯하여 코르도바의 회교사원 등 수많은 이슬람 문화재가 지금까지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예술적 심미안과 이미 본토의 휘황찬란한 예술을 알고 있었던 카를은 유럽 각지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을 스페인으로 대거 불러들였다. 그리하여 예술의 중심을 르네상스가 종식된 이탈리아에서 스페인으로 옮겨 놓아 스페인에서 세계적인 화가를 배출하는 출구를 만들었다.

카를은 1527년에 일어났던 로마 대약탈 사건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이유로 르네상스에 가장 큰 폐해를 끼친 인물로도 평가되었다. 그러나 무적함대 스페인을 예술이 만개하는 문화대국으로 만든 것도 확실한 사실이다. 역사상 최고의 엄친아인 카를과 미술사상 최고의 대접을 받은 티치아노의 관계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정경애 보다아트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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