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가족 백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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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길의 문화예술 들춰보기] 가족 백일장

  • 승인 2017-06-02 00:01
  • 양동길 / 시인양동길 / 시인
“명절 때나 집안에 행사가 있으면 아이들이 모이지요. 손주들을 데리고 백일장을 열어요. 창작의 즐거움을 맛보게 하려 한 일인데, 하다 보니 아이들이 상 받으려는 노력도 하고,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인간관계까지도 배우더라구요.”

무진장 해맑은 늘봄, 시골길을 걸으며 논산에 살고 있는 윤문자 시인이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글쓰기의 기대 효과야 너무 많지요. 상상력, 관찰력, 표현력을 길러줄 뿐만 아니라, 관심영역을 넓혀줍니다. 무엇보다 숨겨진 자신을 끄집어내 주지요. 진지하고 진솔한 자기 자신과의 만남입니다. 생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줍니다. 기획과 서술, 정리를 통해 논리적 사고력이 놀랍게 향상됩니다. 정서함양, 인격도야에 이만한 방법을 찾기 힘듭니다.

그런 연유로 학교에서 다양한 글쓰기를 시킵니다. 아이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요. 누구에게나 자신을 성장시키고 살찌우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 중요성을 대부분 알고 있지만, 아이들을 키울 때 특별히 권유하거나 지도하는 일은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글쓰기뿐만 아닙니다. 때때로 그보다 더 중요한 것들도 우리는 잊고 살지요. 공기, 물과 같이 소중한 것들은 무료이듯이 중차대한 일들에 스스럼없이 대개는 무임승차 합니다.

얼마나 공부하고 부부가 되셨나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공부는 해 보셨나요? 살면서 결혼, 자녀같이 중요한 일이 얼마나 될까요? 그럼에도 우리는 학습이나 훈련을 하지 않습니다. 아는 것을 실천궁행實踐躬行하는 시인의 지혜와 진지한 모습이 상큼하게 다가왔습니다.

감동적인 글을 쓰거나 말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 있겠지요. 체험한 것들을 전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어내기 쉽습니다. 내용이 이야기 속에 있거나 이야기에 내용이 들어있으면 상대방이 흥미진진하게 들어줍니다. 교수법에서 스토리텔링이라 하지요. 오래전부터 문학에서도 차용되어온 수법 중 하나라 생각합니다.

학창시절 글공부를 할 때입니다. 대전의 한 원로 시인의 시를 읽으면서 너무 맑고 고운 시에 푹 빠졌습니다. 소박하고 순수하기 까지 한 그분의 글에 대하여 연세에 비할 때 가식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연륜이 묻어나야 된다는 편견이었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중대한 잘못이었습니다. 그분의 삶 또한 그랬던 것입니다. 가식이었으면 필자에게 다가왔을 리도 없습니다. 생각과 말과 삶의 일치. 사언행일치思言行一致 말입니다. 이상적인 삶의 본보기이기도 하지만 감동적인 글짓기 방법 중 으뜸이지요. 가감이 없으니 순수합니다. 진솔함은 독자의 마음을 쉽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윤문자 시인을 만날 때면 삶과 모습 자체가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녀보다 더 소녀 같은 모습에 반합니다. 배려와 따뜻한 마음에 마음을 빼앗깁니다. 작품에도 사물을 대하는 여성, 어머니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순박하고 올곧고 때론 아침햇살 같습니다.

이에 강우식 교수는 윤문자 시인을 유기농 같은 여자, 유기농 같은 시의 맛을 낼 줄 아는 “유기농시인”이라 하였더군요.

좋은 작품은 독자들이 먼저 알아보나 봅니다. 여기저기 독자들이 무척 많더군요. 너무도 많이 알려진 시 <수박>을 옮겨 봅니다. 함께 감상해 보실래요?

▲ 게티 이미지 뱅크
▲ 게티 이미지 뱅크

나는 성질이 / 둥글둥글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 허리가 없는 나는 그래도 / 줄무늬 비단 옷만 골라 입는다 / 마음속은 언제나 뜨겁고 / 붉은 속살은 달콤하지만 / 책임져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 절대로 배꼽을 보여주지 않는다 / 목말라 하는 사람을 보면 / 가슴이 아파 견딜 수가 없다 / 겉모양하고는 다르게 / 관능적이다 / 나를 알아 주는 사람을 만나면 / 오장육부를 다 빼 주고도 / 살 속에 뼛속에 묻어 두었던 / 보석까지 내 놓는다

윤문자 시인은 충남 논산에서 출생, 지금도 논산에 살고 있습니다. 1995년 『문학과 의식』 으로 등단하여 시집 『하늘 계곡』, 『분홍장갑』 등을 출간하였습니다. 충남 한글유공 표창, 충남문학대상, 충남작품상, 충남논산예술대상, 2011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등을 수상한 바 있습니다.

가정의 달을 보내며 문득 가족을 위해 한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정이 특정기간에만 생각해야 될 일도 아니지요. 자신과 가족, 이웃 간에 함께 해야 될 일들이 많겠습니다만, 소통과 만남도 중요하지 않은가요? 형식에 구애받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글쓰기를 통해 자신, 가족, 이웃을 새롭게 맞이해 보는 것은 어떨까합니다.

양동길 / 시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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