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득사의(見得思議)
나라가 어수선했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은 권력을 남용했고 지인들은 친분을 이용해 개인적인 이득을 챙겼다. 자신의 이득을 위해 뇌물제공을 비롯한 각종 범죄를 저질렀다. 분노한 국민들은 나라를 바로잡고자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결국 개인적인 이득을 취했던 사람들은 모두 법의 심판을 받게 됐다. 옳은 일인지 생각을 하지 않고 이득을 챙겨서 생긴 일이다. 서두부터 왜 이런 얘기로 시작할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강릉 오죽헌(烏竹軒)에서 본 견득사의(見得思議)란 문구가 뇌리에 강렬히 남아서다. ‘이득을 보거든 옳은 것인가를 생각하라.’ 현재를 살아가는 후손들에게 전하는 율곡이이 선생의 메시지다.
사임당, 빛의 일기 촬영지
강원도 강릉을 찾은 건 때 이른 더위가 찾아온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오죽헌 인근에 도착했는데 입구부터 차가 많이 주차돼 있었다. 순간 잘못 찾아온줄 알았다. 십 수년 전에 방문한 기억이 있는데 입구를 비롯해 이렇게 잘 정돈되어 있는 기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람과 차가 많아 주차를 하기도 힘들었다. ‘주말이라 사람이 많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주차를 하고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 어른이 3천 원, 청소년은 2천 원, 어린이는 천 원을 받는다. 미취학은 무료다.
가장 먼저 율곡이이 선생의 동상이 우리를 반겼다. 동상 앞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서 기다렸다. 우리도 줄을 섰다. 사진을 찍고 위로 조금 이동하니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인 ‘사임당, 빛의 일기’출연진들이 남긴 손도장이 전시돼 있었다. 그제야 왜 관광객들이 많은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맨 앞에는 주인공인 이영애 씨와 송승헌 씨의 싸인, 손도장이 관광객들을 반긴다.
그 어머니에 그 아들
율곡이이 선생은 오천원권, 어머니인 신사임당은 오만원권 화폐의 주인공이다. 나라를 대표하는 화폐에 모자(母子)가 화폐의 인물로 선정된 것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만큼 훌륭하신 분들이 나고 자란 곳이니 기운을 잔뜩 받아가야지 생각하고 본격적인 오죽헌 구경에 나섰다.
보물 제165호인 오죽헌은 병조참판을 지낸 최응현이 사위인 이사온(신사임당의 외할아버지)에게 물려준 집이다. 이사온은 다시 그의 사위인 신명화(사임당의 부친)에게 물려주면서 후손들이 관리해 오던 중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으로 지금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조선초기에 지어진 별당건물로 당시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주택이다. 1963년에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왼쪽 마루방은 율곡이 여섯 살 때까지 공부하던 곳이며 오른쪽 방은 1536년 신사임당이 태몽을 꾸고 율곡을 낳은 곳인 몽룡실(夢龍室)이 있다.
그 위로는 율곡이이의 영정을 모신 사당인 문성사(文成祠)가 있다. 문성은 1624년 인조임금이 율곡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학문을 널리 들어 막힘이 없이 통했으며 백성의 안정된 삶을 위해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문성사의 현판은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문성사 주변에는 검은 대나무인 오죽이 자라고 있다. 까마귀처럼 검은 대나무란 뜻인 오죽(烏竹)이란 이름이 붙여진 이유다.
바깥채로 나가면 율곡이이의 저서인 격몽요결과 어린시절 사용했던 벼루를 보관해 놓은 어제각(御製閣)이 있다. 벼루 뒷면에는 정조임금인 율곡의 위대함을 찬양한 글이 새겨져 있다. 오죽헌을 다 구경하고 밖으로 나오면 율곡기념관과 강릉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시립박물관, 향토민속관 등이 있다. 이곳을 다 둘러본 후 시간이 허락하면 경포대가 멀지 않으니 경포대를 구경하면 된다.
-가는 길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영동고속도로로 갈아탄 후 강릉까지 가면된다.
-먹거리
강릉하면 초당순두부니 두부로 만든 음식을 추천한다.
강릉=이성희 기자 token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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