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쁜 일상 속 자연과 힐링 어우러진 도심 속 ‘오아시스’
도심 속 ‘오아시스’가 있다면 이런 곳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서울 한복판. 그런데 이상하다. 시간에 쫓기는 직장인들의 요란한 구둣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면접장에서 긴장한 ‘취준생’들의 땀방울도 물건 하나라도 더 팔려는 상인의 안쓰런 몸부림도 볼 수가 없다.
일상의 고충을 잠시 잊은 듯하다. 오직 듣고 볼 수 있는 것은 걷는 사람들의 미소와 웃음소리뿐. 여기는 ‘서울로 7017’이다.
1970년에 만들어진 서울역 고가가 17개 보행 길로 다시 태어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사용하지 않는 철길에 꽃과 나무를 심어 공원으로 만든 미국 뉴욕 ‘하이라인 파크’(High Line Park)를 벤치마킹했다.
28일, 기자가 직접, 서울역 파출소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100여개의 계단을 오르자 ‘도심 속 오아시스’의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불과 17m 아래에선 꼬리에 꼬리를 문 차량 속 운전자들의 짜증 섞인 볼멘소리가 들리는 데 이곳에선 셀카봉을 든 시민들이 셔터를 눌러대는 소리가 정겹다.
주변에선 ‘이얼싼쓰’(하나둘셋), ‘스고이’(굉장하다) 등 한국인 귀에 제법 익은 외국어까지 들린다. 벌써 이곳이 해외 관광객도 알아보는 ‘보행천국’으로 자리매김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뿐만 아니다. ‘서울로 7017’에선 패랭이꽃, 부채꽃, 개나리는 물론 부레옥잠 등 수생식물까지 저마다 자태를 뽐내며 보행자들을 유혹한다.
걷다 지쳐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듯싶다. 피로를 푸는 방법이 마련돼 있기 때문이다.
안개 분수에서 내뿜는 시원한 물줄기를 맞으며 잠시 쉬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이다. 분수 옆 ‘방방놀이터’에선 어린이들이 펄쩍펄쩍 뛰며 재충전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걷다 보면 투명 바닥 판인 이른바 ‘스카이 워크’도 눈에 띈다. 곳곳에서 하늘 위를 걷는 짜릿함도 맛보는 보행자의 모습이 코믹하다.
‘서울로 7017’은 남대문시장에서 서울역을 거쳐 청파, 만리, 중림동 지역까지 1024m를 구간을 한 번에 걸을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이다.
228종, 2만 4085그루의 조경수와 공중 자연쉼터 등 각종 18개 편의시설 등이 마련돼 보행자들에게 최고의 걷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끝에서 끝까지 왕복하는 데 30분이면 충분할 듯 보였다.
때문에 주말 가족 단위는 물론 평일 서울역 인근 직장인들도 점심을 마치고 짬을 내 걷기에 안성맞춤이다. 지난 20일 개장 이후 이달 말까지 이곳을 찾은 관광객이 30만 명에 육박할 정도다.
간단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매점도 이어 ‘배꼽시계’가 울려도 걱정이 없다.
곳곳에서 공연도 열려 보행자들의 흥을 돋우기도 한다.
지난 26~27일에는 ‘서울로 7017’ 인근 중림동, 서계동, 회현동 주민들이 만리광장에서 봄축제 ‘서울로 잇다 페스티벌’을 열어 눈길을 끌었다.
만리광장 무대에서는 천에 매달려 펼치는 공중 곡예 공연도 열려 보행자들을 눈을 붙잡았고 지역 주민들이 가족과 함께 서울역 일대를 걸어보는 ‘서울로 가족걷기축제’도 열렸다.
안전펜스는 물론 만일의 강력사건 발생을 대비한 경비용역원도 곳곳에 배치돼 있다. 24시간 개방에 따른 안전책이다.
이쯤 되면 “이곳이 보행자 천국”이라는 서울시의 자랑이 허언으로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바쁜 현대인들에게 일상을 잊고 힐링하는 도심 속 ‘오아시스’로 충분해 보였다.
서울시는 도심흉물인 고가도로를 철거하지 않고 시민 여가, 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하는 데 많은 고민과 예산을 들였다. 덕분에 관광객이 모여들어 침체됐던 지역경제가 살아났다고도 한다. ‘보행 천국’이라는 애칭을 얻는 데까지 제법 많은 노력을 한 듯싶다. 대전시도 이 같은 고민을 해보면 어떨까. 걷고 싶은 도시, 대전 그 미래를 그려본다. 서울=강제일 기자 kangjeil@ 사진=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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