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천 변호사 |
재단은 이에 불복해 2009년경 증여세부과처분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는데, 1심은 ‘주식 출연은 경제적 세습 차원이 아닌 순수한 장학 사업을 위한 것이니 거액의 세금 부과는 잘못’이라며 재단 손을 들어준 반면, 2심은 ‘황씨와 재단 주식을 합하면 수원 교차로 주식 전부가 되는 점을 보면 양자는 특수관계로 볼 수 있어 과세 대상이 된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렇게 엇갈린 하급심 판결에 대해 대법원은 이 사건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하여 외국 사례를 참고하는 등 다각도로 심리하였고, 결국 대법원 상고심 재판이 시작된 지 무려 5년 7개월 만인 지난 달 20일 원고 승소판결 취지의 선고가 비로소 내려져, 선의의 기부자인 황씨는 ‘세금 폭탄’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황씨 사건은 기업의 대주주가 공익법인(재단)에 주식을 기부할 때 전체 발행 주식의 5% 초과분에 최고 50%까지 증여세를 물리도록 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조항 때문에 문제가 된 것으로, 이렇게 기부한 주식에 증여세를 부과하는 법 규정은, 기업이 계열사를 우회 지배하기 위해 재단을 세우고 주식을 양도하는 편법을 막자는 취지하에 1991년 도입됐다. 대신 법에‘출연자에게 남은 주식과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쳐도 그 회사의 최대주주가 되지 않을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비과세한다‘는 예외조항을 두었다.
그런데, 문제는 대기업이 지배 수단으로 공익재단을 이용하려는 게 아니라 최대주주가 선의로 공익재단에 주식을 기부할 때인데, 법률 조항으로 판단하자면 특수관계인을 어떻게 보느냐와 관련이 있다. 이 사건에서 세무서는 재단이 황씨와 특수관계라고 판단하고 선의를 간과했지만, 대법원은 ‘특수관계인에 해당하는지는 출연자가 재단의 정관 작성과 이사 선임 등에 관여했는지 등을 따져 판단해야 한다’며 ‘황씨는 재단에 재산을 출연했을 뿐 정관 작성 및 기명 날인이라는 설립행위를 하지 않았다’며 특수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이 사건 판결이 나온 이후 선의의 기부자에 세금 폭탄을 막는 장치인 소위 ‘황필상법(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황필상법 도입이 필요하다는 입장에서는, 선의의 기부가 세금 폭탄이 되어 돌아온다는 것은 건전한 일반인의 상식에 반하며, 비과세 상한선인 ‘5% 룰’을 개정해 일본(50%)이나 미국(20%)처럼 세금 부과 기준을 높여 주식 기부를 원활히 하여야 하며, ‘5% 룰’이 도입된 20여년 전과 달리 지금은 대기업에 대한 감시·견제 장치가 겹겹이 도입되어 있어 훨씬 투명해졌기 때문에 규제를 풀고 사후관리를 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반면 황필상법 도입에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애초 주식 비과세 상한선은 20%였지만 변칙 증여가 심해져 1994년부터 5%로 강화된 것으로 이를 섣불리 개정했다가는 대기업의 변칙 증여가 심해질 것이 충분히 예상되며, 공익법인들이 공익활동보다는 재벌 총수 등 특수관계인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데 동원되는 게 현실이라는 입장이다.
물론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으로는 이번 판결의 취지를 반영하여 현실적으로 선의의 기부자에 대한 세금 폭탄을 막을 장치가 필요하고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기부 문화의 근본적 변화와 확산을 위해서는 공청회 등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거쳐 황필상법이 도입되어야 한다고 본다.
반대 입장에서 우려하는 논거에 대해서는 미국 세법처럼 ‘의무 지출’이라는 제도를 둬 공익법인의 재산 일정 부분을 반드시 공익 활동에 지출하도록 사실상 강제하는 방법을 도입하는 등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부작용을 상쇄할 수 있는 방안을 법에 같이 규정하면 된다고 본다.
기부 문화는 선진국인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척도가 되는바, 이번 판결을 거울삼아 선의의 기부자가 세금 걱정 없이 안심하고 기부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고 아울러 기부금 관련 세제도 전반적으로 개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조성천 변호사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