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안경점에 들렸다. 안경 두 개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하나도 아니고 두 개.늦게 시작한 공부 덕분에 책과 컴퓨터와 씨름을 하다 보니 급격하게 눈에 이상이 온 것이다. 근시와 원시가 한꺼번에 와버렸다. 물론 다들 40대 후반부터 노안이 시작한다고들 하지만 공부를 시작함과 동시에 오다보니 ‘내가 왜 느지막이 공부를 한다고 이 고생을 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내가 왜 갑자기 사회복지를 공부하기 시작했지?’
몇 년 전,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삶을 놓겠다는 분이 계셨다. 믿었던 동업자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빚만 떠안게 되어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분을 살린 적이 있었다. 작은 돈이었지만 보내드리고 하시는 일에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나름 애를 쓰며 어떻게든 희망을 가지고 잘 살아가시길 바랐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갈수록 신세 한탄만 하시며 남에게 의지하려고만 하셨다. 그런 분에게 나는 큰 도움을 드릴 수가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1년 넘게 파고다공원에서 무료‘김밥나눔’을 하는 동안 김밥을 받아가시면서 늘 불평을 하시는 노인분들과 노숙자들을 보고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요새는 무료급식을 하는 곳이 많다. 내가 드리는 김밥 한 줄 없다고 굶주리지 않는다. 그분들에게 필요한 것은 삶의 의미를 찾는 것이었다. 그래서 도움을 드리고자 ‘노인일자리센터’를 찾아가서 일자리를 알아보고 소개하고 했지만 정작 그분들은 일 할 마음이 없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그래 그것을 알고 싶어서 시작한 공부였지.
알고보니 내가 했던 고민들이 사회복지사들이 겪는 어려움이었다.
파고다공원 김밥 무료 나눔을 시작할 때 극구 말리던 사람들 중에 사회복지사 친구들이 많았다. 그들은 이 모든 문제들을 이미 겪었기 때문에 나에게 닥칠 어려움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복지사들은 직접 어려운 사람들을 일일이 만나며 그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애쓴다. 그런데 가장 힘들고 어려운 점은 클라이언트(Clident:사회복지학적 의미: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 대상자 혹은 수혜자)들이 사회복지사들에게 너무 의지한다는 것이다. 맡은 클라이언트들은 많은데 클라이언트들은 작은 일에도 사회복지사들에게 너무 의지하다보니 많은 업무량과 심리적으로도 견디다 못해 그만두는 복지사들이 많다고 한다. 현재 사회복지사들이 많이 생기고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일을 그만두는 사회복지사들도 많다.
사회복지사가 하는 일은 소외되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를 직접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누구도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모두 해결해줄 순 없다. 바로 눈앞의 어려움을 다른 이의 도움으로 해결했다 하더라도 또다시 이와 같은 어려움이 온다면 또 누군가의 도움없이는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사회복지사는 착한 마음만 가지고서는 안 되며, 전문가로서 지녀야 할 충분한 지식과 기술, 변화하는 환경에 잘 대처하고 개입할 수 있는 판단력과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한다. 얕은 지식은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에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무르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제대로 돕는 복지사로서의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물고기를 잡아 주기보다는 잡는 법을 가르치라’는 말도 있듯이 어떤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스스로 이겨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 돕는 일일 것이다.
이것은 사회복지사들만의 일이 아니라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우리들 모두가 해야 할 일인 동시에, 힘들어하는 가족, 이웃, 사회, 나라, 인류를 위해 우리가 서로서로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그래, 안경을 두 개를 끼게 된들 어떠랴. 제대로 자격을 갖춘 복지사가 되기 위함인 걸.
김소영(태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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