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진정한 민주국가가 아니다. 기득권자를 위한, 기득권자에 의한, 기득권자의 나라이다. 그나마 촛불혁명이 가져온 장미대선으로 흐름이 조금 바뀌고 있지만 얼마나 갈지는 두고 봐야 안다. 딴죽을 거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최순실 게이트의 보호자이며 조력자라고 할 수 있는 우병우 청와대 전 민정수석을 불구속기소한지 나흘 만에 벌어진 “돈붕투 만찬”을 보라. 법무부 검찰국장이 수사팀장에게 건넨 돈이 수사경비지원이고 서울지검장이 법무부 과장에게 준 돈이 격려금일 순 없지 않은가?
검찰은 과거관행이었다고 대수롭지 않게 도리질을 했다. 수사흐름도 마땅치가 않다. 돈뭉치가 중요한 게 아니다. 누가 어떤 명목으로 제안했는지, 참석자 선정기준이 무엇이었는지를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문 대통령의 감찰지시로 분위기가 조금 바뀌었지만 그들 사단이 도사리고 있는 한 완벽한 청산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질을 넘지 못한다. 국민의 의식수준이 낮으면 국가가 올바를 수 없다. 더러운 서양문화에 오염돼 자랑스러운 우리 한민족의 정체성이 크게 훼손되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난국에 처했다. 이기주의의 상징이랄 수 있는 자유와 인권을 우선으로 삼다보니 우리 민족의 긍지인 배려와 공경이 온데간데없다. 지나친 편리추구와 교환가치에 치중해 충효와 준법의식이 완전 바닥이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송받던 대한민국의 법질서유지수준이 OECD 30개 회원국 가운데 27위라고 하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차를 끌고 거리에 나서면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온다. 안하무인, 종횡무진, 갈지자운행이 난무해 너무나 무섭다. 목사인 내 친구도 길에 나서기만 하면 욕이 나와 차를 모는 게 겁이 난다고 했다.
국민의 의식수준 못지않게 허술한 법체계가 문제다. 대한민국이 교통사고율, 교통사고사망율 세계 1위인 것은 자동차 및 보험업 육성을 위하여 재무부주도로 1982년에 제정된 교통사고특례법 때문이다.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다가 직진차량과 충돌했는데도 대법원에서 90대 10으로 판결했다. 직진차량이 직전 건널목에서 신호를 위반했다는 것을 빌미로 내린 판결이다. 그러면 도둑을 지키지 않고 잠을 자면 도둑맞은 주인에게도 10%의 책임이 있다는 말인가? 이는 피해자를 위한 법이 아니다. 가해자를 위한 법이고 보험회사를 위한 법이다.
▲ 파리강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요구하기 위해 조직된 파리위원부 시기의 조소앙 선생(2열 왼쪽에서 세번째)/출처=독립운동가 삼균주의 조소앙 기념관 |
우리 대한민국이 단군조선의 강역을 되찾고 그 기세를 드날리려면 우리의 정체성을 되찾아야한다. 자유를 남용하면 방종이 되고 지나친 인권강조는 이기심을 증폭시킨다. 1919년 4월 11일 공포된 대한민국임시정부 헌법초안을 만드신 조소앙 선생이 부르짖은 삼균주의를 되살리는 것이 시급하다. 삼균주의는 임시정부의 건국이념과 정책노선으로 채택된 우리 민족에게 가장 알맞은 사상이다.
삼균주의는 망국의 길로 접어든 중국을 구하기 위하여 제시한 혁명이론인 손문의 삼민주의와는 다르다. 사람들은 삼민주의만 기억하고 숭배하지만 삼균주의가 훨씬 우수하다. 삼민주의는 청조타도를 주장한 민족주의와 입법, 사법, 행정, 고시, 감찰의 5권 분립을 주장한 민권주의, 토지균등분배로 경제적 불평등개선을 위한 민권주의이다. 3.1운동부터 주장한 삼균주의는 정치, 경제, 교육의 균등을 기반으로 한 개인 간의 균등과 해방과 통일을 목표로 한 민족 간의 균등,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철폐를 위한 국가 간의 균등이다.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를 높이 평가하는 것은 결과의 균등이 아니라 시작의 균등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같은 법을 어겼다고 같은 벌을 부과하는 것은 결과의 균등이다. 재산과 소득, 지위에 따라 벌금을 부과하는 것이 시작의 균등이다. 대한민국의 준법의식결여가 결과의 균등을 강요하는 법체계에 기인했다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깡패가 성폭행한 것과 성직자가 성폭행한 것에 대한 처벌이 똑같을 수는 없다.
▲ 조소앙 선생의 삼균주의 |
시작의 균등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제 실현하는 것이 진정한 법치주의다. 2002년 핀란드 노키아 부회장은 50Km지역에서 75Km로 달렸다가 1억 5,000여만 원의 벌금을 물었다. 2010년 스위스는 50Km 지역에서 100Km, 80Km 외곽도로에서 140Km로 달린 한 재벌에게 3억 2,000만원 상당의 범칙금을 부과했다. 소득에 따라 범칙금을 부과하고 상습적 과속운전을 가중 처벌한 것이다. 범칙금의 목적이 범죄예방에 있다면 현재 우리나라의 벌금제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논어 팔일(八佾)편 13장에 획죄어천 무소도야(獲罪於天 無所禱也)라 했다. 하늘에 죄를 얻으면 빌 곳이 없다는 말이다. 하늘이 곧 이(理)이니 이치를 거스르면 하늘에 죄를 얻게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이치를 따라야하고 잡신에게 아첨하지 말아야한다. 하늘과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며 깨끗하게 살 수 있도록 삼균주의를 법치의 근간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하늘이 부여한 권력과 재능을 남용하면 반드시 그에 상당한 벌을 받게 된다. 정치가의 달콤한 사탕발림에 속거나 연에 엮이지 말고 제대로 된 사람을 뽑고 섬광이 튀는 눈으로 늘 감시하며 송곳같이 날카로운 질책을 꺼려해선 안 된다.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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