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달래꽃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히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 김소월 <진달래꽃>
진달래꽃의 여주인공의 심성은 너무도 아름답다. 정녕 우리 한국 여인을 대표하는 전통 여인의 심성이라 하겠다. 얼마나 많은 사랑과 정을 나누고 에로틱한 표현을 빌리자면 雲雨之情도 나눴을 법한 연인이 자신이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말없이 보내 드린다는 말이 그렇지 그리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다.
이 여인의 성정으로 보아 운우지정도 나눌 그런 에로틱한 여인은 더욱 아닐 것이다. 보내는 것도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다. 진달래꽃을 아름따다 뿌리오리니 가시는 걸음걸음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란다. 그리고 죽어도 눈물을 흘리지 않겠단다. 추호도 가시는 님에게 어떠한 부담도 드리지 않겠다는 여인이다. 독자여 생각해보라. 저 중국의 측천무후는 남편도 시어미도 아들도 죽이면서 성의 환락을 즐기면서 제명대로 살다가 죽은 여인 천하의 怪女도 있고, 이 시대에도 정도만 다르지 불륜행각을 밥먹듯이 행하는 못된 군상들이 얼마나 많은가. 더욱이 간통죄가 없어져 이른바 성도덕은 밑바닥이다. 그런데 보라 우리의 진달래 여인의 성정. 그 아름답기가 장미꽃 양귀비꽃 이상의 絶調이다.
그러나 필자가 이제까지 풀어 놓은 것은 수박으로 치면 겉면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우리의 이를 문학의 구조로 이해해 볼 때, 표층적 심리로나 심층적 심리로 들여다 보아도 너무 일방적 인내와 희생의 감내, 一夫從死도 아니고 別離인데 너무도 나약한 심성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그 내심에 죽어도 ‘아니’ 라는 부사어를 앞으로 내세워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는 강한 부정이 요체다.
이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을 나타내는 심리로 가슴과 뼈를 에이는 곡진한 슬픔에 어찌 피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냐는 심정을 절묘하게 표현한 것이다. 참으로 알면 알수록 질곡의 아픔을 슬기롭게 초극할 줄 아는 원숙하고 현숙한 여인이 아닐 수 없다 하겠다.
문제는 육두 방망이로 떠나는 님을 때리거나 시늉을 못할 망정, 이런 소극적 나약한 심성으로는 공포의 시대, 암흑의 시대, 불안한 시대를 사는 여인으로서, 아내로서, 어머니로서 자애롭고 슬기롭고 강인한 여인이요, 아내요, 어머니로서의 소임과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느냐는 거다. 자고로 그 어머니에 그 자식이라 했다. 그에 대한 예증은 일일이 매거할 수 없이 많다. 가정과 이웃과 사회 국가 제대로 되려면, 무엇보다도 가정이 반듯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정의 아녀자, ‘안해’(아내), 어머니가 중심을 잡고 가정사 매사에 슬기롭고, 자애롭고, 부드럽고. 강인하고. 훌륭한 집사 또는 진정한 ‘안해’가 돼야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안타깝게도 문학으로 본 ‘한국을 이끌어 갈 대표적인 여인상’으로서 우리의 ‘진달래꽃’에 나타난 여주인공은 좀 미흡한 면이 있지 않는 가 천착해 본 것이다. 특히 오늘을 사는 이 시대는 하루하루가 달라지는 초 스피드 시대. 죽기 살기의 경쟁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치열한 이 시대다. 이러한 이 지구촌 시대에 이 나라를 건강하게 지켜낼 훌륭한 여인이고, 아내이고, 어머니로서는 거듭 밝히지마는 ‘진달래꽃’의 ‘女人’로서는 좀 미흡하지 않는가 싶다.
김선호 한밭대 전 인문대학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