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지역 동상(銅像)들 무엇을 말하고 있나

대전지역 동상(銅像)들 무엇을 말하고 있나

독립운동가 비롯해 대전지역 30여개… 충무체육관 앞 '윤봉길의사상' 대표적 항일·반공 '이데올로기 시대' 지나며 사회공헌 등 새로운 의미 담기 시작

  • 승인 2017-05-17 11:06
  • 신문게재 2017-05-18 13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 충무체육관 윤봉길 의사상
▲ 충무체육관 윤봉길 의사상
실존했던 인물 형상을 담은 동상이 대전에 대략 30여개 세워진 것으로 집계된다. 어디에 누구의 동상이 있는지 정리된 기록이 없으므로 목격담과 제막식 기사에 의존해 가늠해본 수치다. 동상이라는 영혼불멸의 조형물이 만들어져 생활 주변에 자리하게 됐는지는 중구 부사동 윤봉길 의사상으로 설명해볼 수 있다.

왕복 6차선 충무로가 지나는 충무네거리 옆 충무체육관 입구에 윤봉길(1908~1932) 의사 동상이 서 있다. 오른손에 수류탄을 들고 힘차게 던질 것 같은 역동적인 모습이고 대전에 남은 가장 오래된 동상 중 하나다. 당시 기록에 의하면 1972년 5월 만들어진 윤 의사 동상 제막식에 김종필 당시 국무총리가 참석할 정도로 국가적 행사였다. 높이 약 10m에 무게 3t가량의 큰 규모 동상으로 눈높이보다 4배쯤 높게 설치돼 멀리서도 우러러볼 수 있도록 고안됐다.

윤 의사 동상은 충무(忠武)체육관 개관에 맞춰 설립한 것으로 항일정신 메시지를 시각화하는 의미가 있다. 동상이 위치한 충무체육관은 1964년 대전 최초 지붕 있는 체육관으로 이순신 장군의 애국충절 정신을 담아 거북선 모양으로 시설을 만들었으며, 이때문에 '충무'라는 이름을 붙였다. 충무정신을 담은 체육관 앞에 한국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윤 의사 동상을 세운 것.

조은정 미술평론가는 그의 책 '동상'에서 “항일인사들의 기념동상을 건립하고 유적을 복원함으로써 반일의식을 표면화했고 역사로부터 망각되지 않도록 했다”며 “일제 강점에 저항해 자신을 희생한 사건을 동상으로 남겨 국민과 공유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구 어남동에는 단재 신채호 선생(1880~1936)의 생가지가 복원돼 있는데 을사조약 후 언론을 통한 민중계몽운동을 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돼 옥사한 단재 선생의 동상이 방문객을 맞고 있다. 위패를 모셔 제향을 하고 영정을 보관하거나 이름과 행적을 기록한 비석과 탑을 거리에 세우는 등의 전통적 방식과 비교하면 동상으로 인물을 기억하는 문화는 낯설게 느껴진다.

이러한 문화는 1900년대 초 일본을 거쳐 들어온 것으로 볼 수 있다. 구리 또는 청동으로 제작된 동상이 국내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은 1920년 10월 배재학당 건립자인 아펜젤러 동상으로 추정되는 것처럼 이 시대에 동상이 본격적으로 거리에 세워졌다.

그러나 현재까지 대전에 일제시대 어떠한 동상이 만들어졌는지 기록은 없으며 전해지는 동상도 없다. 대전역과 옛 충남도청 그리고 신사를 지은 노력을 봤을 때 일인 동상을 남겼을 가능성이 있으나 태평양전쟁 당시 청동기 공출 과정에서 사라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공주 영명학교 위리암교장의 동상 제막식이 1937년 10월 있었다는 것과 충북 진천중에서 1964년 학생들이 마련한 성금으로 진천 출신 김유신 장군의 동상을 세웠다는 것이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임창봉 선생
▲임창봉 선생
이제 현대로 넘어와 동상은 항일정신 또는 반공주의 등의 이데올로기를 극복한 새로운 메시지를 담기 시작했다.

▲이기석 박사
▲이기석 박사
대전이안과병원을 세우고 대전보건대를 설립했으며, 충남 공주에 국내 최대 계룡산자연사박물관을 세운 이기석(1923~2005) 박사의 동상이 대표적이다. 대전보건대 교정에 세워진 이 박사의 동상은 생에 즐겨입었을 편안한 한복과 단정히 가다듬은 머리, 안경을 낀 모습이 인상적인데 관람자 눈높이에 맞춰 아담하다. '일만 하다 간 사람'이라는 헌시를 통해 “인생의 폭풍 한가운데서 뜨거운 가슴을 품고 살다 간 청운(靑雲)~'이라며, '박애·근면·탐구'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이병익 박사
▲이병익 박사
이어 대전과학기술대 중앙도서관을 마주보는 교정에 이병익(1929~2012) 박사의 청동 흉상이 매일 학생들과 눈을 마주친다. 평안북도 선천 출신에 전쟁 때 남하해 동방산업·동방개발·가보식품 등을 창업했고, 동방여고와 여중 그리고 혜천대학을 설립했다.

한남대에는 설립자인 린튼 동상이 설립돼 있다. 한국명 '인돈' 미국명 '윌리엄 린튼'(1891~1960) 박사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포함 총 48년 동안 충청·호남 지역을 돌며 선교와 교육사업에 매진했으며, 1956년 대전기독학관 설립 후 1959년 대전대학(현 한남대)을 세워 고등교육의 초석을 다졌다.

▲이복순 여사
▲이복순 여사
충남대 정심화국제문화회관에 있는 이복순 여사(법명 정심화)의 흉상은 대전에 존재하는 몇 안 되는 여성 동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김밥할머니로 알려진 이 여사는 일평생 근검절약해 모은 현금 1억원 시가 50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1990년 충남대에 기증했고, 지금의 정심화홀이 마련되는 계기가 됐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시 소유의 서구 장태산자연휴양림에서는 독림가 임창봉(1922~2002) 선생의 동상이 입장객을 맞이한다. 대전서 통일농원을 세워 1973년 장태산 일원에 낙엽송·오동나무·메타세쿼이아를 심기 시작해 20만 그루의 휴양림을 가꿨으며 1991년 전국 최초 민간휴양림을 이뤘다. 휴양림을 대전시가 인수해 지금은 시의 소유가 됐지만, 임 선생 동상은 공공장소에 대전시장이 세워 뜻을 기렸다는 상징성을 갖는다.

중구 대전선병원 입구에서는 병원을 설립한 선호영(1925~2004) 박사의 동상을 볼 수 있으며, '우리는 찾는 모든 이들에게 언제나 제약 없이 최선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메시지가 눈길을 끈다.

동상의 시대는 사학설립·사회공헌자에서 기업인에게로 무게 중심이 옮겨지고 있다.

▲이구열 회장
▲이구열 회장
옛 대전고속버스터미널과 시외터미널을 만든 요셉 이구열(1924~2011) 회장의 동상이 새롭게 탄생한 대전복합터미널 야와공간에 시민들과 호흡하고 있으며, 최근 타계한 계룡건설 이인구(1931~2017) 명예회장은 사옥 1층에 세워진 동상으로 남아 계룡 임직원들 마음속에 기리 보존될 전망이다.

이밖에 제2연평해전의 박동혁 병장 흉상이 대전국군군의학교에, 동아공고 설립자 최준문 선생이 모교에, 호국영웅 오영안 준장과 천안함 임재엽 중사의 흉상이 충남기계공고을 각각 지키고 있으며, 신협운동의 개척자인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와 장대인 신부 동상이 대전 둔산동 신협중앙회에 마련돼 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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