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은아(가명)는 무단결석이다. 분명히 어제는 오늘만큼은 꼭 오겠다고 약속했는데 ‘혹시나’가 ‘역시나’로 바뀌는 순간이다. 항상 기대치를 낮춰야지, 기대하지 말아야지 생각하면서도 실망감과 함께 드는 졸업에 대한 걱정은 어쩔 수가 없다. 은아는 올해 3학년 담임을 맡으며 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 중 하나이다. 3월 새 학기 첫날 재취학을 하며 무단결석을 시작으로, 나와 처음 만나던 날에도 교실에 1시간을 앉아 있지 못했다. “딱 한 시간만 버텨봐라 좀.” “너가 수업시간이고 쉬는 시간이고 이렇게 나를 찾아대면 나는 다른 반 수업을 언제 하느냐.”
보건 선생님께는 수시로 연락이 온다.
“은아가 3시간째 자고 있는데 아무리 깨워도 안 일어나요. 어떻게 좀 해주세요.”
교무실에서 위클래스와 보건실을 수시로 오가며 은아와의 길고 반복되는 실랑이 끝에 교실로 집어넣는데 수업 전부터 온 기운이 다 빠져나가는 듯하다.
“샘, 저 하루에 담배 한 개피만 피우러 집에 갔다 올게요.”
은아를 끌고 약국에 가서 금연 패치 가장 강한 단계를 사서 화장실에서 붙여준다. 약사 얼굴을 애싸 외면하지만,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떻게든 졸업을 시켜야겠는데 할 수 있을까? 믿어주는 것이 밀어주는 것이라는데 얼마나 믿어야 하는 걸까? 늘 믿음에 배신당하기 일쑤인데….’
은아를 만나고 가장 컸던 고민은 사실 우리 반 다른 아이들이었다. ‘학교생활의 여러 부분에서 수시로 규칙을 어기는 은아를, 그런 은아를 다른 아이들과 다른 규칙을 적용시키는 나를 모두 이해해줄 수 있을까? 혹여 자신들을 역차별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한 번은 맘먹고 반 아이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너희들은 선생님이 은아랑 다른 아이들을 차별한다고 생각하니? 내가 은아만 특별대우를 해주는 것 같아?”
“아니요.”
“왜? 내가 은아 화장은 물티슈로 빡빡 안 지우잖아. 안 억울해? 불공평하다고 생각지 않아?”
“은아는 좀 상황이 다르잖아요. 평등에도 차등적 평등이 있으니까.”
“오, 차등적 평등을 알아?”
“네. 같은 것은 같게, 다른 것은 다르게. 근데 은아 졸업은 할 수 있을까요?”
사실 깜짝 놀라면서도 안심했다. 생각보다 아이들이 참 관대하면서 생각이 깊은 것을 느끼게 되었다. ‘우리 아이들이 은아의 특성을 잘 이해해주는구나. 오히려 어른들과 달리 선입견 없이 대해주는구나. 은아는 학교에 나오는 것 자체가 도전이고 노력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알고 있구나. 나이가 많더라도 친구로 생각하는구나.’
‘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 나와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관용적이고 포용적인 사람이 되어주는 것! 내가 가장 길러주고 싶었던 것을 우리 반 아이들은 이미 실천하고 있구나.’ 올해 학급담임을 하며 아이들로부터 내가 더 많이 배우고 있다는 것을 느끼는 감동의 순간들 중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 은아에게 허용해주어야 하고 다른 아이들의 이해를 구해야 할지 그 범위를 정하는 것은 여전히 나와 다른 선생님들이 고민하는 문제이다. 선생님마다 은아에 대한 지도 방법을 놓고 각자 의견이 분분하시다. 아직 교직 경력과 경험치가 많지 않은 나로서는 은아를 계속 품고 은아와 함께 여러 길을 걸어보며 노력하는 수밖에는 없다. 다행인 것은 나를 지지해주는 반 아이들을 만났다는 것. 아이들로 인해 고민하지만 아이들로 인해 행복한 것이 교사의 삶이 아닌가 싶다. 요즘은 내가 아이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너무나 많구나 하는 깨달음의 연속이다. 앞으로 나의 교사로서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확실하진 않지만, 지금처럼 모든 고민과 행복을 아이들과 함께한다면 그것이 진짜 내가 학창시절부터 바라던 교사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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