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돈이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우리사회의 인식이 ‘돈보다 인간을 더 우선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바뀌는 시점이기를 바랍니다. 돈이면 모든 문제가 풀린다는 인식 때문에 우리는 서로 아프게 하는데 선수가 된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성서에서도 “사람보다 돈이 우선한 결과로 인하여 우리는 온 땅이 황폐화되는 것을 보고, 돈을 최고의 보물로 여긴 결과로 인하여 최고 권력자가 뒤엎어지는 것을 목도하였습니다(지혜서5:25 참조)”는 말씀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돈보다 사람이 더 우선해야 한다는 신앙적 가치가 단지 종교적 가치만이 아닌 사회 전체의 공공의 가치가 될 때 우리는 진정한 공동체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 희망의 기반은 돈이 아니라 그것과는 다른 그 무엇이어야 하며, 그것은 곧 ‘사람’ 그 자체여야 할 것입니다. 시장 십자가는 바로 이런 생각을 일깨워주는 것입니다.
돈을 움켜쥔 손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어려운 처지에 놓인 다른 사람의 손을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행동은 돈보다 사람을 우선시 하는 사회에서 나타나게 됩니다. 돈만을 움켜쥘 때는 자신의 힘만 의지하게 되고 다른 사람을 신뢰하지 않게 되는 것, 이것이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사회 속에서 양육된 인간의 심성일 것입니다. 인간이 서로를 파괴하는 죽음의 사회는 물질을 향한 탐욕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사회입니다. 돈에 대한 욕심 때문에 가족들이 갈라서고, 그것 때문에 서로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사는 사회가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이런 탐욕 때문에 망가진 삶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지만 사회전체가 그러한 사회이니, 개인으로서는 한 사회를 변화시키는데 무력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사회 전체를 바꿀 그러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바로 그러한 사람이 종교인입니다.
종교인의 삶은 ‘상대방이 나를 먼저 믿기를 바라기보다는 내가 먼저 다른 사람을 신뢰하는 행동에 기초하여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내 주장보다는 상대방의 주장을 듣는 겸손한 자세로 사람을 섬기는 사는 종교인은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삶입니다. 그래서 종교인은 세상과 다른 삶을 사는 사람으로 세상을 망가지게 하지 않고 세상을 구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세상을 탐욕으로 사는 사람은 여러가지 고통을 만들어 낼 것이지만, 종교인의 삶은 항상적으로 성숙한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으로 고통을 기반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고통과 희생을 통해서 평화를 이룩하겠다는 신의 의지, 그것이 로 우리들의 희망입니다. 그 희망 속에서 우리는 창조적이며 온전한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종교인 중에 성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는 고통을 통해 새로운 인간을 위한 삶의 지침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4세기경에 만들어진 “인간을 위하여”라는 니케아신조의 핵심가치가 영국에서는 시장십자가라는 상징물로 나타났고 이것이 곧 교회뿐만 아니라 그 사회 공동체가 살아갈 삶의 목표가 된 것입니다. “인간을 위하여”라는 종교적 기본가치가 자본주의가 가장 먼저 탄생하였던 영국 시장구조의 초석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좋은 사회란 물질에 대한 탐욕보다 인간을 위하여 존재하며 인간에 대한 신뢰가 기본바탕이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내가 가장 어려울 때 나를 챙겨줄 사람이 있다’는 것이 돌봄공동체의 가치가 바로 시장십자가의 뜻입니다. 외로울 때 내가 기댈 곳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든든한 일입니까. 당신 때문에 내가 살 수 있었다는 고백이 시장십자가가 세워진 시장 안에서 오가는 말들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그런 사회로 한발자욱 더 다가갔으면 합니다.
유낙준 모세 주교ㆍ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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