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에도 탄핵 촉구 팻말을 목에 걸고 시위하는 학생들에게 공부나 하라며 때리고 욕을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이 찍힌 동영상들이 유튜브에 심심찮게 올라왔었다.
이러한 모습에서 미래의 막연한 불안을 느끼며 자신의 길잡이가 되어줄 멋진 어른들을 원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관용적이고 성숙한 어른들이 되어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나라는 누구나 자신들의 의견을 주장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나와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그 사람을 욕하고 때릴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 누구나 나와 다름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옛날 춘추전국시대 연나라의 왕이 인재를 등용하고자 고심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러 중신들과 의견이 맞지 않아 선뜻 마음에 드는 사람을 뽑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덕행과 학식이 뛰어난 설결이라는 선사(禪師:덕이 높은 승려)를 불러 이 문제에 대한 의견을 들으려고 했다.
“어떤 자를 훌륭하다고 할 수 있겠소? 또 어떤 자를 쓸모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오?”
선사는 잠시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글쎄요…….”
“아니 선사처럼 학식과 덕이 높은 사람도 명쾌한 대답을 해주지 못하니 어찌된 일이오?”
“그것은 왕께서 인재를 보시는 기준과 조정의 중신들이 인재를 보는 기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건 무슨 말이오?”
“사람은 고기를 좋아하지만 소는 풀을 좋아합니다. 또한 사람은 쥐를 싫어하지만 독수리는 쥐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개구리는 뱀을 싫어하지만 뱀은 개구리를 좋아합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사람은 저마다 좋고 싫음의 기준이 다른 법입니다. 그러므로 인재를 등용할 때도 왕께서 좋아하는 기준으로만 판단하지 마시고, 중신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이셔야 합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일방적인 의사 전달에서 벗어나 상대방의 의견을 귀기울여 듣는 상호적인 의사소통을 지향해야 한다. 나의 의견을 관찰시키기 위해 강압적으로 행사하는 사람들의 뒷날벌어질 결말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드디어 이제 대통령선거가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19대 문재인 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국민의 소리에 귀기울이며, 본인에게 반대했던 모든 이들까지 수용하겠다는 통합정치를 기대해 본다.
지금 우린 국민의 편에 서서 절박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화해와 소통, 통합의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를 원한다. 그 모습이 이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김소영(태민)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