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가 이세돌 바둑 명인을 이겼다. 그러나 알파고가 넘지 못하는 벽이 있다. 그것은 누가 뭐라 해도 문학이다. 문학은 가치 있는 인생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감성과 이성을 바탕으로 한다.
이를테면 알파고가 ‘김소월’의 시 ‘진달래꽃’의 “사뿐히 즈려 밟고 가사옵소서”의 ‘즈려’를 과연 어떻게 번역하고 표현해낼 수 있을 것인가. 어림도 없다. 아무리 알파고가 뛰어나다 하더라도 인간의 미세한 감성 감정을 모두 읽어낼 수 없는 것이다. 문학은 이래서 위대한 것이다.
이러한 문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그리고 그 문학을 통해서 시대상을 알 수 있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
그래서 필자는 문학작품에 나타난 어떤 여인이 영육간 건강한 여인이고 어떤 여인이 이 나라의 아내요 어머니였기에 오늘 날 우리나라가 세계 10대 강국에 다가서고 있는가를 피력해보고자 한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따라서 여권신장이 어마어마하게 달라져 가고 있다. 그래서 섣불리 예단해서 이론을 정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누천년 면면히 흘러온 맥은 하루아침에 뒤집어지는 것임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필자는 어떤 여인이 한국을 이끌어 가야 웅비하는 대한민국을 보전할 수 있는가를 모색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보는 것과 같이 이는 순수히 필자의 주관적 견해이기에 많은 질책이 있을 것임 또한 주지의 사실일 것이다. 독자 제현의 오해 없음을 기대한다.
진솔히 밝혀서 우리의 지나온 역사, 곧 자녀의 교육에 음양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어머니다. 어머니의 언행과 철두철미한 교육철학에 따른 집념에 의해 자녀들의 장래가 결정된다. 그 영향으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되고 어머니에 따라 그 자녀의 미래, 장래, 필생의 삶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견해가 아니라고 본다.
우선 ‘아리랑’에 나타난 여인상을 보자.
작금에는 세계적인 한류 트레드가 된 우리의 대표적인 정한을 나태는 종합예술이다. 그러나 그 핵심은 노래에 있다. 노래의 일부를 인용해서 필자가 펼쳐내려 하는 이론적 근거를 삼아보자.
‘아라랑 아라랑 아라리요 아라랑 고개를 넘어 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난다.’
언뜻 생각해 보아도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사내’다. 여린 여인의 모든 걸(영육) 생채기를 내놓고, 휘저어 놓고 매정하게 제 맘대로 구불구불 보일 듯 말 듯한 S자형의 산모롱이를 흰 도포자락을 나비모양 나풀거리며 사라져 가 버리는 것이다. 아! 얼마나 애틋하고 원망스럽고 기가 막힌 노릇인가 말이다. 그러니 아무리 착한 심성의 여인이라도 떠나는 낭군이 아님 연인이 발병이 나기를 바라는 것 정도의 투정, 또는 한섞인 하소를 낼 수 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좀 생각을 사려 깊게 좀 냉정하게 해보자. 그래도 한 때는 그리 모든 걸 좋아했을 님이 떠난다 해서 십리도 못가서 ‘발병’이 나기를 바란다는 것은 지나온 역사가 보여준 아름다운 한국 여성의 심성으로 발로로는 좀 독한 면이 내재해 있지 않은가. 물론 여인의 그 내면적 심성은 빨리 발병이 나서 잘못생각해서 신세를 망칠지도 모를 외지로 떠나지 말고 곧 내게로 다시 돌아오라는 정녕 아름다운 심성, 따사로운 마음씨가 원망을 핑계삼아 숨겨져 있다고 본다.
어쨌든 필자는 표층적인 면에서 볼 때 이 ‘아리랑에 나타난 여인’이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이 되면, 일단은 이웃 일본 국가를 넘어뜨릴 강건한 자녀를 둘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서로서로 아름답게 어울렁 더울렁 더불어 사는 심성으로 세계의 중심국으로서의 너른 면모를 지니고 살기에는 좀 못 미치는 어머니 상이 아닐까하는 것이다.
김선호 한밭대 전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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