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녀’로 불리는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 씨(복녕당) 사이에 출생해 구한말의 민족적인 비극을 한 몸으로 살다간 여인이다. 국가와 민족, 여성으로서 개인의 삶 등 거대한 드라마를 끌어낼 수 있는 비극적 역사 인물이, 유준현의 소설로 연재가 되어 우리 사회가 관심을 두기 시작해 45년 정도가 지난 지금 어쩌면 가장 관심을 두는 극의 소재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고종의 딸로 영화를 타고난 그녀는 볼모로 일본으로 끌려가 15년을 정신병원에 갇혀 지냈고 정략결혼과 이혼, 딸의 사망, 어렵사리 귀국, 낙선재에서 일생을 마치게 된다. 몇 년 전부터 영화로, 연극으로 무용으로 많은 장르가 작품화하고 있다. 제작진이 어떤 시점(視點)에서 보든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고, 드라마의 극성(劇性)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번 대전시립무용단은 이러한 민족적인 주제의 선택으로 일단 대중적인 성공을 기대할 수 있는데 과연 많은 관객이 춤으로 만들어진 덕혜옹주의 삶을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소재적인 가치를 인식한 예술감독 김효분의 선택은 구한말의 비극을 음미하는 역사적인 교훈을 목표로 극성이 뚜렷한 춤극을 만들어냈다.
김효분의 안무는 역사적인 사실 즉, 시간적인 흐름을 따라 덕혜옹주의 일생을 그렸다. 대중적으로 그 이야기가 쉽게 전달되는 드라마로 일대기를 그리돼 춤의 상징성을 높여 이미지의 표현으로 감성을 끌어내는 기법이다. 덕혜옹주를 중심에 둔 이 작품은 그 역을 맡은 무용수의 힘에 상당부분 지배를 받게 되어 있는데, 안무자는 직업무용단의 군무진을 폭넓게 사용해 시각적인 효과를 배가시켰다. 덕혜옹주를 맡은 육혜수(첫날 배역)는 개인 파워를 응축시켰다가 풀어내는 긴장과 이완을 적절히 활용하여 비장미를 연출해낸다. 후반 군무진의 춤량(量)을 한몸에 받아내면서 중심에서 제어하는 힘이 돋보였다. 대극장의 큰 무대는 비극의 섬세한 감성 노출보다 큰 선의 그림을 관객이 먼저 보게 되기 때문에 안무자의 공간적인 처리가 더 중요할 수 있다. 육혜수는 이러한 군무의 도형(圖形) 속에서 덕혜옹주의 기본적 감성에 충실했다.
어린 시절의 덕혜옹주를 별도의 어린 배역에 궁중옷을 입혀 드러냈고, 호리존트의 두 개의 궁궐 기둥 형상의 이미지로 초반 구한말의 배경을 구체성을 담아 보여준다. 작품 전체는 컨템포러리라 할 만큼 한국창작춤의 현대적인 감각으로 만들어졌다. 어린 덕혜가 일본으로 떠나는 배의 이미지는 소용돌이의 배경 영상과 함께 쉽게 전달되면서도 상징성을 높인 장면이다. 김철희의 조명은 좌우 직선과 수직으로 교차시킨 선의 기법을 써서 갇힌 덕혜의 상황을 대변하는 등 극적 상황을 이끌어가는 주요역할을 한다. 작품의 세련도를 높힌 매개역할이다.
안무자는 덕혜의 솔로 배역을 중심에 두어 많은 움직임을 요구하면서 장면 전환에 따라 스토리텔링을 상징하는 군무를 활용한다. 궁정의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줄을 선 상궁과 나인들의 붉은 의상의 고전적인 춤을 보이기도 하고, 덕혜의 고통과 외로움, 출렁거리는 마음을 군무로 표현한다. 흰 저고리의 민중적 표현도 집단무에서 나온다.
작품은 프롤로그를 포함해 5개의 장면으로 연출되었다. 족쇄, 제1장 너무도 아련한... 제2장 얼어붙은 봄... 제3장 혹독한 시련... 제4장 나를 모른다 하오... 제5장 오랜 염원... 으로 드라마투르기가 짜여있는데 안무자는 빠른 장면 전환과 역동적인 춤으로 관객을 시각적으로 사로잡는다. 덕혜의 일본에서의 고통장면의 일본문화(의상 등)적인 표현을 제외하고는 민중의 신명적인 요소를 담은 춤들이 주류를 이룬다. 김효분의 춤베이스를 느끼게 하는 원형적인 몸의 감각이 대중성을 겨냥한 함성의 소리처럼 울림으로 증폭된다. 이것은 민족적인 요소를 강화시킨 후반부의 장면에서 더해진다. 덕혜옹주 역의 육혜수를 중심에 두고 민족을 상징하는 군무진이 좌우종대를 이루어 집단무를 많은 분량 춤추게 되고 덕혜는 비상하듯 호리존트에 설치된 중앙구조물 문을 향해 올라서면서 막이 내린다. 작품 후반부로 갈수록 보여준 단원들을 풀어놓은 듯 분방한 느낌의 풋풋한 건강미도 김효분 안무의 특징으로 관객을 신선한 춤을 즐기게 했다.
이번 대전시립무용단은 춤예술성의 탐미적인 요소와 민족적인 드라마의 소재가 적절하게 결합해 많은 대중이 춤을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레퍼토리로 완성했다.
김경애 춤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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