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새 대통령의 ‘백의종군 선언’을 듣고 싶다

  • 오피니언
  • 풍경소리

[풍경소리]새 대통령의 ‘백의종군 선언’을 듣고 싶다

  • 승인 2017-05-08 15:35
  • 신문게재 2017-05-09 23면
  •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나라에 충성을 다하려고 했으나 죄가 이미 이 지경에 이르렀고, 어버이에게 효도를 하고자 했으나 어버이 또한 돌아가셨다.” 420년 전 5월 봄날, 이순신의 마음이다. 그 때도 꽃비가 온 땅을 적셨고, 눈부시게 싱그러운 날이었지만, 그는 생사의 기로에 서서 수많은 부하들과 함께 전쟁터에서 목숨을 걸고 일본군과 싸웠다. 또 전투가 끝나기도 전에 파직·체포·압송 소식을 들었다. 한산도 진영으로 돌아오자마자, 등 뒤에 울려 퍼지는 “사또! 어디를 가십니까. 이제 우리들은 죽었습니다!”라며 길을 막고 울부짖는 전라·경상·충청의 군사와 백성을 뒤로 한 채 나라의 죄인이 되어 붙잡혀 올라갔다.

남녘 봄바람과 꽃바람은 죄인 이순신, 불효자 이순신, 못난 아비 이순신의 길을 따라 바다를 건너고 육지를 달려 양력 4월 19일, 서울 의금부 감옥에 그를 홀로 남겨두고 북으로 갔다. 전쟁터에서 빗발치던 일본군의 총탄이 아니라, 임금과 대신들의 결심에 따라 생사가 오가는 28일의 감옥 생활 끝인 5월 16일, 백의종군 처분을 받고 풀려났다.

봄꽃을 즐기고, 지지하는 대통령 후보를 따라 편을 갈라 논쟁하는 우리와 극단적으로 다른 한 참된 사람의 가슴 아픈 봄날이었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 감옥에서 봄을 만난 그 마음이 어땠을까. 또 지금 이 땅의 상황과 우리 모습을 본다면 뭐라 할까.

감옥을 나온 그날, 그의 일기는 “맑았다. 감옥문을 나왔다.”로 시작한다. 눈이 시리게 화창한 봄날, 따사로운 봄볕을 그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5월 18일, 일찍 길을 떠나 그 유명한 ‘백의종군’을 시작했다.

조선의 바다를 호령했던 수군 대장이 계급장도 없이 육지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묵묵히 걸었다. 애간장만 녹였다. 눈물과 한(恨), 고독과 번뇌, 절망과 고통, 절치부심과 도약의 길이었다. 마침내 9월 13일, 삼도수군통제사에 다시 임명되었고, 10월 26일 13척의 전선으로 일본군 133척을 격파했다. 명량의 기적이다. 백의종군은 처벌의 한 종류였지만, 그 이후 위대한 재도약의 여정을 상징하는 단어, 불멸의 이순신 그 자체가 되었다. 그래서 보통사람들은 그의 삶을 알기에 백의종군을 감히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다.

우리사회에서 가장 쉽게, 자주 입에 담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권 패자들이다. 이번 대통령 선거가 끝난 뒤에도 예외 없이 등장할 단어가 백의종군일 듯하다. 그 말을 울먹이며 떠난 뭇 패자들의 행적을 보면, 패배를 인정하거나 책임을 지거나 다시 민심을 얻기 위해 진짜 백의종군을 했던 사람은 없는 듯하다. 도망치듯 외국으로 떠났거나, 잔꾀를 부려 훗날을 도모할 지역으로 내려갔다. 다시 등장할 그 사이에도 국민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간당간당한 권력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줌 무리와 함께 어두운 골방에서 갇혀 지냈다. 때가 오면 철새가 되어 나타났다. 그들이 타락시킨 ‘이순신의 백의종군’이다.

진짜 이순신의 백의종군은 그들처럼 패배했거나, 도망치며 떠드는 변명꺼리 백의종군이 아니다. 그가 다시 조선 수군을 재건하러 길을 재촉할 때, 백성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었다. “다시 오셨으니, 우리들은 살 길이 생겼습니다!” 패배 앞에서 도망친 그들, 권력욕의 화신인 그들과 이순신의 백의종군의 차이이다. 패자들이 오염시킨 백의종군이란 말을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이제는 새로 대통령이 된 사람의 첫마디에서 나오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백의종군 선언’을 듣고 싶다. 국민 속에서, 국민과 함께, 국민을 하나로 만든 참된 이순신의 백의종군을 실행하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현장에서 소통하는 열린 귀의 대통령, 누구라도 광장에서 대통령을 얼싸안을 수 있는 기회가 많은 친구 같은 대통령, 함께 울고 눈물을 닦아주는 평범한 이웃 같은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 외세의 위협 속에서도 국가와 국민에게 자부심과 자존심을 지켜주는 당당한 대통령을 갖고 싶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1.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2.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3. 대전장애인단체총연합회, 한남대 공동학술 세미나
  4.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5. "함께 새마을, 미래로! 세계로!"

헤드라인 뉴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실낱 희망도 깨졌다

2026년 세종 국제정원도시박람회 개최가 2024년 가을 문턱을 넘지 못하며 먼 미래를 다시 기약하게 됐다. 세간의 시선은 11월 22일 오후 열린 세종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이하 산건위, 위원장 김재형)로 모아졌으나, 결국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산건위가 기존의 '삭감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다. 민주당은 지난 9월 추가경정예산안(14.5억여 원) 삭감이란 당론을 정한 뒤, 세종시 집행부가 개최 시기를 2026년 하반기로 미뤄 제출한 2025년 예산안(65억여 원)마저 반영할 수 없다는 판단을 분명히 내보였다. 2시간 가까운 심의와 표..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드림인대전]생존 수영 배우다 국가대표까지… 대전체고 김도연 선수

"생존 수영 배우러 갔다가 수영의 매력에 빠졌어요." 접영 청소년 국가대표 김도연(대전체고)선수에게 수영은 운명처럼 찾아 왔다. 친구와 함께 생존수영을 배우러 간 수영장에서 뜻밖의 재능을 발견했고 초등학교 4학년부터 본격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김 선수의 주 종목은 접영이다. 선수 본인은 종목보다 수영 자체가 좋았지만 수영하는 폼을 본 지도자들 모두 접영을 추천했다. 올 10월 경남에서 열린 105회 전국체전에서 김도연 선수는 여고부 접영 200m에서 금메달, 100m 은메달, 혼계영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무려 3개의..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현장]구청·경찰 합동 쓰레기집 청소… 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속보>="내 나름대로 노아의 방주 같아…'나는 자연인이다' 이런 식으로, 환경이 다른 사람하고 떨어져서 살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22일 오전 10시께 대전 중구 산성동에서 3층 높이 폐기물을 쌓아온 집 주인 김모(60대) 씨는 버려진 물건을 모은 이유를 묻자 이같이 대답했다. 이날 동네 주민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쓰레기 성이 드디어 무너졌다. <중도일보 11월 13일 6면 보도> 70평(231.4㎡)에 달하는 3층 규모 주택에 쌓인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청소하는 날. 청소를 위해 중구청 환경과, 공무원노동조합, 산성동 자율..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