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
지난겨울 경기침체의 긴 터널을 지나 산과 들, 숲 속마다 파릇파릇한 풀잎과 나뭇잎들이 싱그러움을 뽐내는 계절이 되었다. 경제상황도 주식시장만 보면 코스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완연한 봄이다. 그러나 글로벌 훈풍에 힘입어 수출이 늘어나고 투자도 살아나고 있지만, 정작 고용과 소비가 증가하지 않고 있으니 이는 봄은 왔는데 농부들이 들에 나가 씨를 뿌리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다. 봄이 와서 자연의 만물은 소생하고 있는데(세계 경제 상황) 정작 논과 밭에는 모를 심지 않고 파종하지 않으니(국내 경기 여건) 가을에 거둬들일 곡식이 부족할 테고 겨울이 걱정되니 농부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지금이 경기회복 국면이 아니라 경기 위축 상황이 잠시 멈춘 것이라고 진단한다. 국내 경기가 저점을 찍고 상승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내수경기를 살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결국 수출-투자-고용-소비 증가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 중 가장 약한 부문인 고용을 늘리는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 취업을 못 하거나 안정적이지 않은 일자리로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지갑을 열수가 없을 것이고, 지갑을 열지 않아 돈이 돌지 않으면 소위 말하는 ‘돈맥경화’에 걸리게 될 것이다.
일자리를 늘리려면 수출을 주도하고 있는 대기업이 고용을 늘려야 하는데 정작 이들 기업은 강성노조, 높은 인건비 등을 피해 국내 일자리를 늘리기보다는 해외로 나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 가치로 내세우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공식 선언한 이래 중국의 사드 보복처럼 전 세계가 자국의 이익과 반대되는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 현지에 공장을 세우고 인재를 고용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 되는 세상이 되었다.
그보다는 다른 나라보다 기업 하기 더 좋은 조건을 만들어 줘서 국내에서 경제활동을 늘려가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엇보다도 고용 없는 성장을 주도하는 대기업보다는 중소 제조기업과 창업기업 중심 경제로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고용 창출 능력은 대기업보다 중소기업이 높으며, 매출 천억 원을 넘는 벤처기업이 가장 우수하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첨단기술 업종일수록 고용 창출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분석되었다.
특히 요즘 대두하고 있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는 속도, 범위, 영향력 면에서 기존 1~3차 산업혁명과는 비교할 수 없는 대변혁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되므로 이에 대한 대비도 긴요하다. 불과 10여 년 전에는 기업 시가 총액이 30위 권이던 애플과 구글이 현재 세계 1~2위로 올라온 것을 볼 때 빅데이터와 인공지능, 로봇이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경제·사회 전반이 뒤바뀌고 산업구조와 일자리도 크게 변화할 것이라 예상한다.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큰 위기에 빠지겠지만, 체계적으로 준비하고 대응하면 도약의 기회가 될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심리적인 위축을 걷어내 내수를 살리고 돈이 돌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 관점에서 요즈음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금요일 조기 퇴근하기나 징검다리 연휴에 휴가를 장려하는 것도 마냥 비판할 일만은 아니다. 또한, 새 정부에서 우선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되는 공공분야 단기 일자리 창출도 훈풍이 불고 물이 들어올 때 배를 띄우는 고육지책으로, 잘 활용한다면 고용과 소비가 살아나 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복구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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