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숙빈 을지대간호대학장 |
학회의 주제는 「스트레스로부터 자유로운 삶(Stress Free Life)」으로 스트레스에 대한 인문학적 통찰을 기조 강연으로 시작해 음식, 수면, 오페라, 시, 무용, 흡연, 삶의 의미 등 우리네 일상인 생활습관이나 문화적 구성, 그 안에서 스트레스를 생각하고 치유적 방안을 찾으려는 내용이었다. 다양한 내용인 만큼 다양한 전공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많은 사람이 마지막 강좌까지 듣는 매우 실속있는 학술대회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언제나 사람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기조 강연의 울림이 컸는데, 불확실성과 불안의 이 시대에 사람들이 찾기 시작한 인문학을 디딤돌 삼아 속도와 효율의 틀을 깨고 변해야 한다고 연자는 주장했다. 텍스트에 무조건 순응하지 말고 묻고 또 물어 새 길을 찾아야 하고 그 안에 주체가 목적이 사람인지를 또한 물으라고 강조했다.
그에 따르면 인생의 황금기가 4살 무렵이라고 한다. 그 나이보다 어릴 때는 인지 능력 등이 모두 발달된 것이 아니니 비교할 바 못되고 그 보다 나이들기 시작하면 벌써 이모저모 스트레스 받는 상황이 벌어지니 그럴 것 같기도 하다. 부부가 맞벌이를 하는 지인의 아이가 취학전 일찍부터 어린이집이니 유치원을 다녔는데, 여러 해 다니다보니 어린이용 프로그램에 익숙해져서 기린반쯤 되어서는 선생님이 할 말을 미리 말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에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더라는 가슴 짠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삶이 참으로 스트레스 투성이고 일찍부터 이겨내야 할 것이 많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다면 4살 무렵이 생의 황금기일수도 있겠다 싶다. 아직 부모의 전폭적인 보호와 사랑 속에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놀면 칭찬 들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 시기 어린이들의 또 다른 특징은 질문이 많다는 것이다. 인지와 언어의 발달과 더불어 나름의 내적 세계가 형성되면서 꿈도 꾸고, 역할놀이도 하며, 궁금한 것도 많아진다. 따라서 질문을 쏟아놓기 시작하면 부모들이 모두 답해주기 귀찮을 정도인 어린이들도 허다하다. 강연을 한 인문학자의 주장처럼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부터 비롯되어 개인의 노력으로는 벅찬 불안과 좌절의 시대를 벗어나기 위해서 삶에 대해 끝없이 묻고 또 물어 근본적 가치를 찾아야 한다면 우리는 내 안에 위축되어 들어있던 너댓살 어린이의 끝없는 물음을 되살려야 하겠다.
왜 사느냐? 삶은 무엇이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등의 본질적인 질문도 해야 하겠지만 이제까지 습관처럼 살아온 우리의 일상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크고 작은 물음표를 던져보는 게 필요하겠다. 마침 컴퓨터를 켰더니 어느 식당 벽에 붙은 흥미로운 게시물을 사진 찍어 올린 것이 눈에 띄었다. 내용은 “ 포스팅, 입소문 금지 요. 대기시간 길어짐 조기 마감됨(품절) 서비스, 친절 개판됨 여러분만 손해임 주문 못할 수도 있음. ” 이었다.
게시문의 내용으로 미루어 손님들이 이 식당의 음식을 맛있게 먹었어도 굳이 소문내지 말라는 주인의 부탁이다. 왜? 우리는 당장 의문을 품을 것이다. 많이 파는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에게 좋은가 생각해보자. 주인의 말대로 입소문이 나서 손님이 많아진다고 해서 손님에게 좋을 것은 없다. 오히려 쓰여진대로 대기시간 길어지고, 품절되고, 서비스 나빠지는 일만 생길 수도 있다.
그런데 왜 주인이 이걸 썼어? 돈 많이 벌기 싫은가? 의문은 이어진다. 아마도 주인은 지금 정도의 손님에 만족하며 적당한 시간에 문 닫고 자기 시간을 즐기려는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맛집이라는 암시를 주려는 광고일 수도 있다. 만약 후자라 하더라도 귀여운 발상 아니겠는가. 이 때쯤 우리는 슬몃 웃으며 돈벌이가 삶의 모든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느니, 사람마다 가치가 다를 수 있다거니, 전환적 발상이 좋았다느니 등을 말하며 재미있다고 느낄 것이다. 살면서 느끼는 재미는 밝은 생명력이다. 어린 시절 신기한 것을 보았을 때, 재미나는 것을 들었을 때 가졌던 바로 그 느낌표이다.
크고 작은 삶의 현상에 관심을 가지고 물음표를 던져보자. 가족이나 친구와 같은 마음일 때 아하! 느낌표를 찍어보자. 그래 그렇게 이 어려운 시대를 헤쳐나가보자. 적당한 소란스러움이 기분좋은 아침이다.
임숙빈 을지대간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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