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공감이 필요한 ‘82년생 김지영’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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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공감이 필요한 ‘82년생 김지영’의 슬픔

  • 승인 2017-04-25 10:14
  • 신문게재 2017-04-26 22면
  • 주혜진(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주혜진(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주혜진(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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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혜진(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요즘 조남주 작가의 작품 『82년생 김지영』이 72년생과 62년생뿐 아니라 92년생 김지영들 사이에서 뜨거운 화제다. ‘김지영’은 1982년에 태어나 학생과 회사원을 거쳐 주부로 살아가는 보통의 한국 여성이다. 여자아이, 아가씨, 그리고 아내와 엄마로 살아가는 인생의 여러 순간순간에 김지영이 겪는 크고 작은 성차별적 경험은, 느낄 수 있지만 분명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슬픔으로 차곡차곡 쌓인다. 어떤 ‘62년생 김지영’은 소설을 읽는 내내 한숨이 멈추지 않았다면서, 조카뻘쯤 되는 김지영의 삶이 자신의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아 또한 슬펐다고 했다.

82년생 김지영이 자신의 슬픔을 남편과 충분히 이야기 나눴다면, 그 슬픔을 둘이 곰곰이 들여다보고 덜어내보려 했다면, 조금은 덜 슬프지 않았을까?

새로운 정부 탄생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교차하는 봄 날 오후, 차년도 대전시 양성평등 정책 계획 수립을 위한 세대별 여성 의제 발굴 집담회를 연구원에서 열었다. 이 집담회엔 ‘92년생 김지영’부터 ‘52년생 김지영’까지 각 세대 김지영의 삶을 이야기해 줄 대전 여성들이 두루 참여했다. 커피향이 은은하게 퍼지고 쿠키가 바사삭 부서지면서 ‘모든 세대의 김지영들’의 수다는 가벼운 농담에서 제법 무거운 정책 이슈까지 오래 지속됐다. 양질의 일자리와 경력단절을 조금이라도 유예시킬 수 있는 근무환경, 방과후 학교의 프로그램, 환경문제와 먹거리까지 여성의 삶과 관련한 다양한 화두가 오고 갔지만, 그녀들이 세대를 불문하고 가장 크게 공감한 문제는 ‘남성과의 소통’이었다. ‘관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썸남’, ‘아이와 대화하기 힘들어하는 아빠’,‘젖은 낙엽 취급 받는 남편’등 바깥일 하며, 사회를 익혔다는 남자들이 정작 ‘사회적’이지 않다고 김지영들은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소통이 안되는 이유는 우선, 소통의 기회를 앗아가는 남성들의 과도하게 긴 노동시간에 있다. 하지만 긴 노동시간만큼이나 소통을 방해하는 장애물은 소통에 대한 ‘필요성’ 혹은 ‘절실함’ 부족이다. 여성들은 아이를 키워야 했기에 아이와의 소통에 더 많이 시간을 할애하고 애쓸 수밖에 없었고, 전문인으로 한우물을 파기보다는 두루두루 가족, 이웃과 화목하게 지내야하는 게 여성으로서의 미덕이었기에 서로 돌보고 배려하는 법을 빨리 깨우쳤다. 이러한 배려와 소통의 기회가 부족했던 남성들이 뒤늦게 아이들, 아내, 동네사람들과 소통하려니 서로 어색하고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가정을 꾸리기 전, 평등한 부부관계와 부모됨을 위한 소통의 방법을 생각해 보고 연습하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집담회에 참석한 대전의 김지영들은, 혼인 전에 가족구성원 간 소통과 배려의 방법을 배우는 과정을 여러 공인된 기관에서 시행하고 이를 이수한 부부에게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82년생 김지영’의 슬픔은 사실 가족 구성원 모두의 슬픔이다. 이 슬픔에 대해 미리 이야기할 기회를 갖는 일은 김지영에게도, 그리고 그녀의 남편에게도 모두 절실하다. 공감되지 않은 개인의 슬픔은 더 큰 슬픔을 야기하기 때문이다.

주혜진(대전세종연구원 책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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